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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생산적 금융' 외치지만…현실은 '대기업 쏠림' 왜
입력: 2026.04.14 14:20 / 수정: 2026.04.14 14:20

5대 은행 1분기 대기업대출 증가율, 중기대출의 5배 수준

생산적 금융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중 대기업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팩트 DB
생산적 금융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중 대기업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금융당국이 올해를 ‘생산적 금융 전환 원년’으로 내세우며 첨단산업과 창업·벤처, 지역기업 지원 확대를 독려하고 있지만, 실제 은행권 자금 흐름은 혁신 중소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기업 쪽으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국민성장펀드 조성과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 상향 등을 통해 자금을 부동산과 가계에서 기업과 투자로 돌리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은행권 역시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첨단·혁신산업, 창업·벤처기업, 지방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여신 흐름은 정책 방향과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3월 말 기준 대기업대출 잔액은 179조11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8조7127억원 늘어 증가율 5.12%를 기록했다. 반면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680조7618억원으로 6조3356억원 증가하는 데 그쳐 증가율이 0.94%에 머물렀다.

전체 잔액만 놓고 보면 중소기업대출 비중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다만 증가 속도만 보면 대기업대출이 중기대출보다 훨씬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다. 생산적 금융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실제 은행권 자금은 혁신 중소기업보다 우량 대기업·안전자산 쪽으로 더 빠르게 쏠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는 건전성 부담이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56%, 기업대출 연체율은 0.67%였다. 이 가운데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0.13%에 그친 반면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82%로 훨씬 높았다. 중소법인 연체율은 0.89%,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도 0.71%에 달했다.

자본비율과 자산건전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은행들로선 생산적 금융 확대 요구를 받더라도 실제 여신 심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낮은 대기업·우량차주 중심으로 자금을 배분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CET1 비율 관리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위험가중자산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중소기업 대출 확대에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우선 소상공인과 개인사업자 여신심사 체계부터 손보는 작업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제3차 신용평가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매출·업종·상권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소상공인의 미래 성장성을 평가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체계(SCB)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업·농협·하나·신한·우리·국민·제주은행 등 7개 은행은 올해 하반기부터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대출에 새 평가체계를 시범 적용할 예정이다.

이는 담보와 과거 금융이력 중심이던 기존 심사 방식에서 벗어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소상공인에게 대출 승인, 한도, 금리 측면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은 이와 함께 소상공인 통합정보센터 구축, 대안신용평가 활성화, 신용성장계좌 도입 등을 병행해 중·저신용자와 금융이력 부족 차주의 금융 접근성을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자금 공급 측면에서도 금융당국은 정책금융과 민간자금 유입 장치를 동시에 확대하고 있다. 금융위는 올해 정책금융 공급계획으로 총 252조원을 편성하고, 이 가운데 150조원 이상을 5대 중점 분야에 집중 공급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벤처·혁신·기술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육성이 포함되며, 관련 공급 규모만 19조원에 달한다.

또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첨단전략산업과 관련 생태계 전반에 대규모 자금 조성을 추진하고,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도 15%에서 20%로 상향해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벤처·혁신기업 투자용 상장 공모펀드인 BDC 도입도 시행했으며, 지방기업 지원을 위해 정책금융 지방공급 확대목표제를 가동해 올해 비수도권 공급 비중을 41.7%, 금액 기준으로는 106조원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금융권도 AI와 ERP 등 비재무 데이터를 활용해 기업금융 심사와 자금관리 체계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과 연동해 매출, 매입, 재고, 자금 흐름 등 기업의 실시간 경영 데이터를 확인하고, 과거 재무제표가 아니라 현재 영업 상황을 토대로 대출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일시적으로 재무지표가 약하더라도 실제 사업 흐름이 안정적이거나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보다 정교하게 가려낼 수 있어, 담보나 보증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자금 접근성을 높이고 대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금융권이 중소기업 금융을 기존의 후행적·보수적 심사에서 벗어나 보다 정밀한 실시간 평가 체계로 전환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ERP 연계 뱅킹 시스템을 통한 자금관리 효율화를 추진하는 한편, 대안정보를 활용해 기업의 미래 가치와 성장 잠재력을 평가하는 ‘SME 특화 모델’ 개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 산하 제주은행은 실시간 ERP 데이터를 활용한 기업금융 브랜드 ‘DJ Bank’를 선보였다. 신한금융은 ERP 기반 대안신용평가 전략모형을 통해 기존 재무제표 중심 심사로는 포착하기 어려웠던 우량 고객을 발굴하고, 리스크 식별의 정밀도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기업 내부 시스템이나 ERP와 은행 시스템을 직접 연결해 조회·이체 등 금융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모델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은행도 회사 ERP를 통해 여러 은행의 금융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존 대출심사는 이미 지나간 시점의 재무현황을 토대로 하는 후행적 평가 위주였지만, AI와 ERP 기반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하면 현재 기업의 영업 상황과 재무 상태를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며 "평가 정밀도를 높여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보다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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