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조인성은 배우로서 작품을 대하는 법부터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그 어떠한 질문에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합을 맞춘 감독과 동료 배우들을 향한 신뢰를 먼저 드러냈다. 이를 보면서 그의 겸손함이 지나치게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시작과 끝을 확실하게 책임지는 단단한 중심축이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인성은 영화 '휴민트'(감독 류승완)가 개봉하던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격적으로 관객들과 만나기 전 취재진을 만난 그는 "오랜만에 설에 영화를 선보이게 됐는데 이제 시작이니까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문을 열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액션 영화로, '베를린'(2013)과 '모가디슈'(2021)에 이은 류승완 감독의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이다.
먼저 조인성에게 '휴민트'를 큰 스크린으로 본 소감을 물었다. 다만 그는 자신보다 관객들의 만족도를 우선순위에 두며 "남의 작품은 잘 보여도 제 건 잘 안 보인다. 잘 나온 건지 아닌지 모를 때가 많은데 그게 더 좋기도 하다. 자신의 영화에 도취하지 않는 거니까"라며 "자칫 흥분하기 좋은데 제 작품은 잘 안 보여서 흥분하지 않는다. 조용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조인성은 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 역을 맡아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직장인이라고 표현한 그는 작품의 수미상관을 맞추면서 세계관의 안내자가 되기 위해 어떠한 부분에 연기 중점을 뒀는지 자세하게 들려줬다.
"조 과장은 자신의 필요에 맞게 나열된 물품들을 하나씩 주머니에 넣고 일을 하러 가요. 피곤하지만 찌든 느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건조하게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한 뒤 일을 하러 가죠. '미생'의 직장인처럼 조 과장의 일상생활로 시작해서 끝나요. 그런 지점에서 마지막 장면은 끝일 수 있지만 새로운 하루가 될 수도 있고요. 직장인으로서 고달픔과 피곤함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극 중 조 과장은 국제 범죄의 정황을 추적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돼 현지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 분)와 접선하게 되는 인물이다. 직장인이라고 표현된 만큼, 피도 눈물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냉철하고도 기계적으로만 해낼 것 같지만 이와 궤를 달리하는 캐릭터다.
과거 동남아에서 벌어진 국제 범죄를 추적하던 중 자신의 정보원이 희생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조 과장은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위험에 처한 채선화를 목숨 걸고 구한다. 이렇게 인류애와 사명감이 강하게 자리 잡은 인물인 만큼, 국정원의 차갑고 무서운 이미지와는 한 발짝 떨어지려 했던 조인성이다.
"관객들은 조 과장의 시선을 통해 사건에 이입하는 만큼 진하게 연기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껴야 되는데 제가 진하게 하면 뭔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될 것 같았거든요. 그럼에도 캐릭터를 운영하기 위해서 첫 장면부터 액션 신이 나오니까 조 과장의 무력과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는 딱히 잘못한 게 없어도 국정원이 찾아오면 무섭잖아요. 그런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어요. 이런 느낌은 액션신에 담았으니까 휴민트를 대할 때 정보가 아닌 감정을 교류하는 상대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이러면 캐릭터에 입체성이 생기니까요. 그래서 더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다정하고 차갑지 않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죠."

다만 일부 관객들은 조 과장과 채선화가 국정원과 휴민트 그 이상의 관계가 아니냐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채선화의 전 약혼자 박건(박정민 분)과 함께 자신의 목숨까지 걸면서 정보원을 지키려는 조 과장의 행동은 사명감이나 죄책감과는 또 다른 결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 것. 이에 조인성은 "그게 그거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다. 영화가 풍성해지기 때문"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렇게 연기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건 느끼는 사람들의 영역이거든요. 저도 다른 작품을 보면서 그럴 때가 있어요. 이번에도 제가 뭘 준비했다기보다 캐릭터들과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어떠한 케미고 화학적 작용이 나온 거죠. 노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거예요. 관객들도 극 중의 캐릭터들도 착각은 다 그들의 자유죠. 팩트 체크는 안 된 거니까요. 그런데 그게 사람 간의 감정 상태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신세경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인성은 "연기 지능이 좋다. 감독님의 말을 잘 알아듣고 시간적인 부분을 줄여준다는 건 감각적이기도 하지만 계산적이기도 한 거다. 이건 곧 내가 원하는 대로 테이크를 한 번 더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늘 스크린에 액션 맛집을 잘 차리는 류승완 감독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조인성의 액션신이 돋보인다. 그는 긴 팔과 다리를 활용한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상대를 제거하며 보는 이들까지 아프게 만드는가 하면,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한 채 총기를 센스있게 활용하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또한 그냥 걷는 장면일 뿐인데도 독보적인 비율이 더해지니 마치 런웨이를 연상케 하며 우아한 분위기도 자아낸다. 이는 조인성이라는 사람이 가진 매력부터 배우로서 켜켜이 쌓아온 여유와 경험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부분이겠지만, '모가디슈'와 '밀수'에 이어 그와 세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된 류승완 감독이 어떻게 하면 스크린에서 조인성을 가장 멋지게 보여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도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이러한 취재진의 감상평을 들은 조인성은 류 감독으로부터 특별한 디렉션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걸 노리고 연기한 건 아니다. 액션에 큰 의의를 두는 것도 아니고 액션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 편도 아니라서 제가 그렇게 나왔다는 건 감독님의 어떤 매직이 작용한 것 같다"며 "저처럼 키 크고 잘생긴 배우는 많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감정을 이어받는 것에 집중했고 액션도 연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류 감독에게 공을 돌린 조인성이지만, 분명 그의 센스가 발휘된 부분도 존재했다. 이는 이번 작품을 위해 처음으로 국정원에서 총기 교육을 받은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국정원 교관님이 알려준 총기 사용 사례를 참고하기도 했어요. 총을 맞고 쓰러진 후에 무릎에 총을 끼워서 뒤꿈치로 장전하는 아이디어를 얻었죠. 충분히 고증된 거니까 액션신에 넣었어요. 다만 휴민트를 대하는 방식이나 실제 활동은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기밀이라 대답해 줄 수도 없을 거고요. ('무빙'의) 김두식 같은 초능력이 있는 블랙 요원이 있냐고 물어보니까 고민을 많이 하시더니 국가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농담을 주고받은 게 생각나요(웃음)."
1998년 광고 모델로 데뷔한 조인성은 2000년 '학교3'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25년 넘게 배우 활동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대표작과 인생캐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휴민트'로 2026년을 가열차게 시작한 그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으로 관객들과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제작되는 작품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어려운 업계 환경에서도 꾸준히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조인성이다. 그럼에도 배우로서의 고민이 깊어진다는 그는 "오래 했다는 건 새롭지 않고 많이 봐왔으니까 기대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고 털어놓으면서 앞으로의 목표와 해외 진출의 가능성에 관해서도 솔직하게 답했다.
"결국은 연기지만 연기를 안 하는 지점까지 가고 싶어요. 한국 영화계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OTT를 통해서 한국 작품을 전 세계에 선보일 수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제의가 없는 거 보면 저는 로컬용이라고 자체 평가를 내렸어요. 해외 진출을 생각하기보다는 한국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런 유통망을 통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해외 진출의 재능과 자질은 있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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