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고교학점제 공통과목의 학점 이수 기준 유지를 권고하면서, 기초학력 책임을 고등학교에 집중시키는 현행 제도의 한계가 다시 드러나고 있다. 초·중학교 단계에서 누적된 학습 결손을 고등학교에서 해결하도록 한 정책 설계가 과연 현실적인지에 대한 비판이다.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교위는 교육부에 고교학점제 개선안으로 '공통과목의 학점 이수 기준은 출석률과 학업성취율을 모두 반영하고, 선택과목의 학점 이수 기준은 출석률만 반영한다'고 권고했다. 교육부가 이 권고안대로 지침을 마련할 경우 공통과목은 기존과 같이 학업성취율 40% 이상과 출석률 3분의 2 이상을 동시에 충족해야 학점을 이수할 수 있다. 교사는 미이수가 예상되는 학생에게는 의무적으로 최소성취보장지도(최성보)를 실시해야 한다. 고교학점제에서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192학점 중 공통과목은 84학점으로, 약 43%를 차지한다.
미이수제와 최성보 폐지를 요구해 온 교원단체들은 책임교육을 표방하는 고교학점제가 교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쌓인 학습 결손을 고등학교 교사에게 짧은 기간 안에 보완하도록 한 제도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현직 교감인 손덕제 국교위 위원은 회의에서 "고교학점제의 본질은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접하며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며 "최소 성취 수준을 보장해 책임교육을 구현하는 제도로 설계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현직 교사인 이보미 위원도 "교사들이 책임교육을 거부하거나 기초학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책임교육은 개인 교사 노력에 맡길 게 아니라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제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 전가' 우려는 중학교 단계의 기초학력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매년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전체 학생의 3%를 표집해 실시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중학교 3학년의 기초학력 1수준(미달) 비율은 국어 10.1%, 영어 7.2%, 수학 12.7%로 나타났다. 국어·수학 과목에선 열 명 중 한 명은 최소한의 학습 성취에 도달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이뤄졌던 2020년(국어 6.4%, 영어 7.1%, 수학 13.4%)과 비교해도 1수준 비율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었다. 고교 단계에 책임을 집중시키기보다는 하위 학년에서 학습 결손을 조기에 보완하는 구조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요구와 달리 기초학력을 담당할 인력과 제도는 아직 부족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시도교육청에 배치된 기초학력 전담교원 수는 △2021년 253명 △2022년 368명 △2023년 359명 △2024년 307명 △2025년 312명으로 300명대에 머물러 있다.
교육부는 2026년 업무추진 방향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기본이 튼튼한 교육 실현'을 내세우며 기초학력 보장 강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과제 실현을 위해 기초학력 전담교원과 기초학력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한 지원체계를 강화하고, 기초학력 전담교원을 525명으로 확충하겠다고 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개별 지도로 지원하는 전담교원은 주로 초등학교에 배치된다. 교육부 말대로 내년 500명대로 늘어나더라도 전국 초등학교 수의 8% 수준에 불과하다.
기초학력 전담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의 기초학력보장법에는 학습지원교육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학교장이 '학습지원 담당교원'을 지정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학습지원 담당교원은 학습지원교육 운영계획 수립, 예산 지출 등 기초학력 관련 행정업무만 담당하고 있어학생을 직접 가르치며 학습 결손을 보완하는 역할과는 거리가 있다. 김상규 좋은교사운동 초등정책위원은 "학습지원 담당교원마저도 각 학교에서 담당자를 임의로 지정하는 수준"이라며 "기초학력 전담교사를 제도적으로 양성하고 안정적으로 배치하기 위해서는 기초학력보장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