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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스타를 떠나보내면서 정작 돌아볼 부분은 우리 은행들의 경쟁력이다. 우리 기업들이 맹렬하게 글로벌 시장에서 영토를 넓히는데, 우리 은행들이 해외에서 제대로 돈을 벌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진은 지난 2022년 국회에서 열린 '론스타 사태 진실 무엇을 밝혀야 하나' 토론회 장면./더팩트 DB |
[더팩트 | 김원장 언론인]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 독립한 뒤 1845년까지 외로운 독립국가였다. 국기에도 별 하나를 넣어 독립과 자주를 상징했다. 그래서 텍사스주를 론스타(Lone Star)라고 부른다. 우리 현대사에 가장 미운 짓을 많이 하고 떠난 투기 자본인 론스타도 텍사스에서 왔다.
흔히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에 팔았다고 말한다. 실제 당시 감사원과 검찰 수사 결과, 그리고 한참을 흘러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외환은행은 ‘헐값’에 팔렸다. 우리는 그런데 왜 외환은행을 헐값에 팔았을까.
1997년 말 동남아 경제 위기가 번졌다. 우리에게 외자를 빌려준 해외 금융기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차환을 거부했다. 우리 정부의 외환보유고에는 겨우 40억 달러가 남아있었다. 삼미와 기아, 한보, 진로그룹이 줄줄이 무너졌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10억 달러’를 빌렸다. (참고로 현대차가 앞으로 3년간 미국 조지아공장에 투자하는 돈이 ‘210억 달러’다). 그때는 온 나라를 뒤져도 그 돈이 없었다.
IMF는 돈을 빌려주면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렇게 미국식 냉정한 자본주의가 우리 시장에 이식됐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키고, 노동자의 정리해고를 도입했다. 재벌에게는 과도한 차입을 억제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요구했다.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하고, 이사회 중심 경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장 강한 구조개혁을 요구한 부분이 금융산업이였다.
수많은 은행과 종금사, 보험사가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끝에 결국 퇴출됐다. 금융권에서만 9만여 명이 직장을 잃었다. 제일은행 테헤란로지점 한 직원의 ‘눈물의 비디오’가 온 국민을 울린 것도 이 무렵이다. 국제사회는 특히 국제 BIS기준에 맞는 은행의 자본 확충을 요구했다. 외환은행의 지분 45%를 독일계 코메르츠방크가 인수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 나오려면 우리도 문을 열어야 했다. 그런게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믿었다.
그런데 2002년에 카드대란이 터졌다. 1위 카드사인 LG카드사가 무너졌다. 정부는 서둘러 카드론 등 대출을 규제했지만, 2002년 말에는 카드사의 30일 연체율이 13%를 넘었다. 신용불량자가 순식간에 5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들이 신용카드로 쓴 돈을 갚지 못하자 부실은 금융권으로 번졌다. 외환카드가 부실해졌다. 현대그룹의 부실에 흔들리던 외환은행은 외환카드의 부실까지 더해졌다. 결국 매각이 결정됐다.
한미은행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에게 넘어갔다. 이후 칼라일은 한미은행을 시티그룹에 3조 1천억 원에 되팔아 7천억 원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릿지캐피털도 2년이 안돼 영국계 스탠다드앤차타드에 되팔아 1조 원 넘는 차익을 남겼다. 보수진영은 ‘자본시장의 생리’라고 하고,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의 범람’이라고 하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에 문을 열고 처음 맞은 높은 파도에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냈다. 돈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검찰은 외환카드의 주가조작을 밝혀내 론스타에 대해 최소한의 법적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누가 왜 외환카드의 BIS비율을 끌어내리며 서둘러 팔려고 했는지 아직도 그 진실을 모른다. 진실을 모르니 누구도 처벌하지 못했다. 심지어 론스타의 고문이 된 뒤 자문료로 15억 원을 받은 전직 외환은행장도 처벌하지 못했다.
1905년, 나라빚을 갚겠다고 국민들이 나서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남성들은 담배를 끊고 여성들은 비녀를 팔았다. 그때 일본이 빌려준 돈이 1300만 원, 지금 가치로 높게 환산해도 1조 원이 안된다. 그때 그 돈이 없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 주요 은행들의 지분을 해외자본에 팔았다. 비싼 값을 치르며 우리는 글로벌 자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해외자본의 국내 투자보다 우리가 해외에 투자한 돈이 훨씬 많다. 올해 3분기 우리 국민이 해외에 투자한 대외금융자산은 2조8천억 달러(4125조 원)에 달한다.
론스타를 떠나보내면서 정작 돌아볼 부분은 우리 은행들의 경쟁력이다. 우리 기업들이 맹렬하게 글로벌 시장에서 영토를 넓히는데, 우리 은행들이 해외에서 제대로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창의와 도전, 생산과 혁신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게 하는 게 은행의 역할이지만, 우리 은행들은 여전히 ‘담보 있으세요?’만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운 론스타에게 욕만 할 게 아니라, 우리 금융산업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돌아볼 시간이다. 그것이 론스타에 지급한 비용이 수업료가 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