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분야건 AI가 최대 화두인 시대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영화 음악 광고 할 거 없이 AI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해 현실과의 간극도 빠르게 좁히고 있다. 인간이 만든, 인간을 닮은 콘텐츠라 할 수 있다. <더팩트>가 AI 콘텐츠를 살펴보고 생성형 AI 툴로 음원 만들기에 도전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음악이나 OTT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기능이 있다. AI(인공지능) 덕이다. 더 나아가 AI는 콘텐츠 제작에 일부 활용된다. 그랬던 AI가 이제 인간을 보조하는 도구의 역할을 넘어 창작을 한다. 그 경계를 넘어선 인공지능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속도와 구조도 바꿔놓고 있다.
AI는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 사람이 만든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것을 넘어 아예 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간단한 영상 제작 정도를 뛰어넘어 음악 영화 광고 등 영역이 폭넓다. 물론 사람이 지정하는 입력값 즉, 프롬프트가 있어야 하지만, AI는 거기에 광범위한 학습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해 살을 붙인다. 그 결과물이 이제 현실과 매우 흡사할 정도로 AI 기술이 발전했다. 그 결과 AI는 지금 '속도'와 '효율'의 경제학을 재정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한 영화 '나야, 문희'가 개봉했다. 이 작품은 세계 최초의 상업용 AI 영화다. 가상인간을 주인공으로 했던 기존의 AI 영화들과 달리 실제 배우의 초상을 활용했다. 배우 나문희의 AI 초상권을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진행한 'AI 단편영화 공모전' 출품작 중 '쿠키게임', '나문희 유니버스', '지금의 나, 문희', '두 유 리얼리 노우 허(DO YOU REALLY KNOW HER)', '산타 문희' 등 5편을 모아 구성했다.
'나야, 문희'와 더불어 AI를 활용한 영화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AI 단편영화제가 곳곳에서 열리고 권한슬 감독은 단편 '원 모어 펌킨'으로 지난해 3월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지난 9월 열린 서울 국제 AI 필름 페스타에서는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후 한 사대부의 이야기를 풀어낸 '시구문'(광희문의 옛 이름)이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실제 배우의 얼굴을 스캔한 후 재가공 방식으로 덧입혀 AI와 현실의 경계를 좁혔다.

그러더니 지난달 15일엔 AI를 적극 활용한 장편 영화가 개봉했다. '범죄도시'로 잘 알려진 강윤성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중간계'다. '원 모어 펌킨'의 권한슬 감독이 AI 연출을 책임졌다. 강 감독에 따르면 차량이 폭파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보통 4~5일 정도 걸린다면 AI를 활용할 때 1~2시간 내로 끝낼 수 있고, 1년여가 걸리는 후반 작업을 AI를 활용해 한 달 반 정도에 끝냈다. 극장용 영화로 하기엔 AI 영상이 아직 어색하다는 평이 많지만 분명 유의미한 시도다.
물론 이전에도 CG(컴퓨터 그래픽)나 VFX(특수시각효과)로 구현하던 액션 및 판타지 장면을 생성형 AI로 완성하거나 예고편 편집을 AI로 하기도 했다. 지금의 AI 콘텐츠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AI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AI 활용의 가장 큰 효과는 강 감독의 말처럼 바로 시간과 비용이다. AI는 사람이 촬영하지 않은 가상공간을 저비용으로 빠르게 구현할 수 있다. 이는 곧 더 많은 이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콘텐츠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AI는 음악과 뮤직비디오, 더 나아가 가수까지 만들 수 있다. 별다른 음악 지식 없이도 손쉽게 음원을 만들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들부터 AI 에이전트 기술을 활용해 음원 제작, 관리, 유통, 수익화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지원하는 음악 크리에이터 통합 플랫폼까지 다양하게 있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엔 AI 플랫폼으로 만든 곡들이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AI를 기반으로 한 아이돌그룹도 여럿 있다. 흔히 '본체'라 불리는 실존 인물이 있는 팀도 있고 아예 AI가 만든 가상 인물인 경우도 있다. 또 하이브는 2023년 AI 오디오 기술을 활용해 가수 이현을 미드낫으로 재탄생시켰고, 해외에서는 AI로 복원시킨 비틀즈의 'Now and Then(나우 앤드 덴)'이 2025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록 퍼포먼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엔 AI로 만든 뮤직비디오도 나왔다. 가수 유현우가 지난 9월 새 싱글 'No control(노 컨트롤)'을 발표하면서 사진 단 한 장을 기반으로 전체 영상이 AI로 제작된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AI 활용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AI로만 완성했다. 영화 '노브레싱', '공기살인'을 연출한 조용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사랑의 기억이 이식된 킬러 AI 로봇의 혼란을 그렸다.
또 한 증권사는 추석 연휴 기간에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는데 모든 영상과 영상에 삽입된 주제곡까지 100% AI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2020년 화제를 모았던 로지를 비롯해 AI로 만든 가상인간을 모델로 내세우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앞서 언급한 영화와 뮤직비디오처럼 실존하는 스타의 이미지에 AI로 숨을 불어넣어 광고를 제작하는 움직임도 있다. 톱배우들이 소속된 한 기획사 대표는 "최근 한 소속 배우의 이미지를 활용해 AI 광고 공모전을 열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아직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없고 AI 콘텐츠 초상권 문제도 가이드가 없어 응하진 않았는데 굉장히 놀랐다"고 전했다.
AI로 만든 콘텐츠는 급성장의 시기지만 저작권 초상권 등 법적 문제는 아직 제대로 마련된 게 없다. 미국 작가조합(WGA)은 AI가 문학적 저작물을 대체할 수 없다고 명시했고, 배우 조합(SAG-AFTRA)은 디지털 복제(음성·얼굴) 사용 시 사전 동의와 보상을 의무화했다. 가상인간의 경우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선 아직까지 유의미한 목소리와 움직임은 없다.
비틀즈의 'Now and Then' 복원 사례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인간이 부재한 영역에서 '존재의 잔향'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명의 제작자가 AI로 드레이크와 더 위켄드의 음성을 합성해 만든 'heart on my sleeve(하트 온 마이 슬리브)'는 스트리밍 퇴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보이스 권리'와 저작권 체계의 공백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다. 결국 AI의 가치 판단 기준은 '창작 대체'가 아니라 '창작 확장'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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