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월급? 돈이 돈을 키우는 자산 시장의 '딜레마' [김원장의 경제학전]
  • 김원장 언론인
  • 입력: 2025.10.31 00:00 / 수정: 2025.10.31 00:00
제조업 같은 실물 경제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돈이 돈을 키우는 자산 시장은 무섭게 성장합니다. 자본의 수익률이 노동의 수익률을 압도하는 시대. 중앙은행의 고민이 커집니다./더팩트 DB
제조업 같은 실물 경제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돈이 돈을 키우는 자산 시장은 무섭게 성장합니다. 자본의 수익률이 노동의 수익률을 압도하는 시대. 중앙은행의 고민이 커집니다./더팩트 DB

[더팩트 | 김원장 언론인] "미국은 물가에 집값이 포함되는데 한국은 안 됩니다."

어느 유튜버의 설명인데 절반쯤 맞는 말입니다. 미국은 소비자 물가에 주거비용을 포함합니다. 정확하게는 ‘집값’이 아니라 ‘거주하는 비용’을 포함합니다. OER(Owners’ Equivalent Rent)이라고 해서 ‘만약 내 집을 누군가에게 빌려줬을 때 받을 수 있는 월세’를 계산해서 그 값을 소비자물가에 반영합니다. 집주인도 집을 구입한 비용을 따져보면, 사실 자신의 집에 월세를 내고 사는 거잖아요. 그 값을 소비자물가에 반영하는 겁니다. 그 비중이 25% 정도 됩니다. 그리고 세입자들이 내는 월세도 8% 정도 반영합니다.

그러니 미국은 소비자물가(CPI)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33%나 됩니다. 휘발유나 디젤 같은 자동차 연료비의 비중이 3% 정도니까, 주거비 비중이 상당히 높은 거죠. 그럼 왜 집값은 소비자물가에 포함되지 않을까. 집값은 ‘자산’으로 보는 거예요. 만약 자산도 물가에 포함한다면, ‘주가’나 ‘금값’도 물가에 넣어야겠죠. 집값을 결정하는 ‘집을 사는 행위’를 소비라고 보지 않고 ‘투자’라고 보는 거예요. 소비자물가에 포함되는 김치나 승용차는 우리가 소비해서 사라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주가’나 ‘주택’은 소비해서 사라지지 않고, 그 가치가 계속 변동하죠. 그래서 소비자물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죽 소파를 사는 것은 소비지만, 집을 사는 것은 투자다’라고 보는 거예요.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자가주택은 제외하고 전세와 월세 비용만 반영합니다. 2020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를 개편하면서 전세는 5.40%, 월세는 4.43%의 비중으로 반영합니다. 그러니 대략 소비자물가에서 9% 정도 주거비가 반영됩니다. 어때요? 매월 가계 지출에서 정말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9% 정도 되나요? 현실과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들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와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와 차이가 크다고 하죠. 이런 이유가 깔려 있어요. 우리 소비자물가는 ‘주거비용’이 잘 반영이 안됩니다.

흔히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고 하죠. 특히 자산 시장이 무섭게 오릅니다. 미국 증시도 한국 증시도 연일 사상 최고치입니다. 자산 가격이 이렇게 무섭게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돈이 많이 풀려서입니다. 지난 2015년 한국의 유동성(M2)은 2000조 원 정도였는데요, 2025년은 4200조 원이 넘습니다(한국은행). 경제가 성장하면 당연히 유동성이 늘어나는데요, 그 값을 빼면 그만큼 시중에 풀린 돈이 돈의 가치를 끌어내린 겁니다. 흔히 인플레이션이라고 하죠,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부동산 같은 자산 가치는 더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선진국 대부분이 비슷해요. 지난해 우리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수익률 15%나 됩니다. 무려 160조 원을 벌었습니다. 같은 해 우리 최대기업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32조 원인데, 국민연금은 그냥 돈을 굴려서 160조 원을 벌었습니다. 반도체나 스마트폰을 만들지도 않는, 그저 돈으로 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법니다.

이렇게 계속 자산가치가 오르다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또 대규모로 시장에 돈을 풀겠죠. 2008년 금융위기에도 그랬고, 2020년 코로나 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돈 때문에 생긴 위기를 자꾸 돈으로 막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성장률이 점점 떨어져 올해는 겨우 1% 성장도 어렵습니다. 기업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는 자꾸 떨어지는데, 서울 아파트 가격만 오릅니다. 월급으로 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집니다. 격차는 더 커집니다. 중앙은행은 이렇게 오르는 자본시장의 가격을 어디까지 물가에 반영해야 할까. 만약 소비자물가가 자산 시장을 더 반영한다면, 발표되는 물가 지수는 더 오른 것으로 나올 겁니다. 그럼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중앙은행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조업 같은 실물 경제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돈이 돈을 키우는 자산 시장은 무섭게 성장합니다. 자본의 수익률이 노동의 수익률을 압도하는 시대. 중앙은행의 고민이 커집니다. 시장 경제가 ‘기업이 아닌 아파트가 월급을 주는 시대’가 된다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아파트 값을 얼마나 반영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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