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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의 집값이 극심한 불안 조짐을 보인다고 말하는 전문가 누구도 평택이나 오산이나 파주나 시흥이나 수원의 아파트 가격이 고점 대비 40% 가까이 폭락한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강남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들은 왜 10여 년 전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매입하지 않았을까./더팩트 DB |
[더팩트 | 김원장 언론인] 1972년,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 등 8명은 정신과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환청이 들린다고 말했다. 모두 건강한 상태였던 이들은 ‘조현증’과 ‘조울증’ 진단을 받고 모두 가짜 입원에 성공했다. 입원 이후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정상적인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이를 알아차리는 의료진은 거의 없었다. 참여자 중 한 명은 입원 이후 일상을 자세히 메모했는데, 의료진은 이를 ‘강박적인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이들 8명은 최단 7일에서 최장 52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로젠한 박사는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지(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1973)에 발표했고, 정신의학계는 크게 출렁였다. 한 정신과 병원이 실험 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로젠한 박사는 해당 병원에 몇 달간 가짜환자(pseudo-patients)를 보낼 것이며, 그 병원에서 이들 가짜환자를 추려내 달라고 제안했다. 해당 병원은 이후 병원을 찾은 193명의 환자 중 41명을 ‘가짜환자’로 의심했다. 하지만 로젠한 박사가 보낸 가짜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전문가들의 분석이 얼마나 쉽게 빗나가는지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로젠한의 실험’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이 유독 잘 빗나가는 분야가 바로 경제다. 경제 현상은 아기코끼리의 몸무게나 라면의 끓는 물 온도처럼 정확한 계산이 어렵다. 금리나 환율 등 수많은 변수와 함께 ‘사람의 마음’이 들어간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이 동원된다. 그래서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하려고 노력한다는 가정하에 예측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 역사에서 가장 큰 ‘뻥카’였던 맬서스의 ‘인구론’도 그래서 틀렸다. ‘제임스 밀’, ‘데이비드 리카도’, ‘앨프레드 마셜’등 당대의 학자들이 모두 인구론을 수용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고 훨씬 안전해진 사회에서 아이를 더 낳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장을 분석하는 집단 중 최고의 전문가들과 가장 깊은 정보를 가진 집단은 단연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Fed)다. 지난 2019년 ‘제레미 파월’ 연준의장은 돈을 풀어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원 청문회에서 "뜨거운 것을 보려면 약간의 열기는 견뎌야 한다(To call something hot, you need to see some heat)"고 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연준은 무서운 속도로 돈을 풀었다. 2021년 초, 그는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을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21년 2분기가 되자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에 근접했다. 그는 ‘인플레가 우리 곁에 왔지만 곧 지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인 2022년 초 그는 ‘인플레가 길어져도 경기침체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22년 봄이 되자 결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를 뛰어넘었다. 파월은 그해 7월, ‘우리는 인플레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그 무렵 미 CNBC가 월가의 유명 애널리스트와 최고 투자책임자(CIO) 등 400여 명에게 시장의 가장 큰 위험 요소를 물었더니, 코로나바이러스도 우크라이나전쟁도 아닌, '연준의 잘못된 분석'을 첫번째로 꼽았다).
시장의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9월 발간한 ‘겨울이 어른거린다(Winter looms)’ 보고서에서 반도체산업의 장기 침체를 예견했다.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SK하이닉스는 26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크게 내렸다. 1년이 지난 지금 하이닉스의 주가는 49만 원(10월 2일 거래일 기준)을 돌파했다.
시장에는 여전히 확신하고 단언하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목표주가까지, 확신하고 또 확신한다. 한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내놓은 공급정책이 너무 부족해 곧 집값이 폭등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3년 전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서울 강남의 집값이 극심한 불안 조짐을 보인다고 말하는 전문가 누구도 평택이나 오산이나 파주나 시흥이나 수원의 아파트 가격이 고점 대비 40% 가까이 폭락한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강남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들은 왜 10여 년 전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매입하지 않았을까. 2014년 여름까지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0억 원이였다.
오래전 퇴임한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경제를 전망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워. 다만 지나온 경제가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치 KTX 역방향 자리에 앉은 것처럼...’ 지나고 나서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마치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온다. 이를 두고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 질 녘에야 날아오른다’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시장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오직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자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권위있는 전문가들은 늘 자신의 전망을 조심스러워했다. 자신의 과거 분석이 틀렸다고 되돌아봤다. 시장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또 틀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신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차 사라지고, 유튜브에는 확신에 찬 사람들의 목소리만 이어진다. 그들의 전망은 이번에는 맞을까.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이유는 뭔가를 잘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분명하게 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