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분명 이름은 있는데 얼굴이 없다. 영화 속 캐릭터와 이를 연기한 배우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이 문장의 주인공인 신현빈은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다소 파격적인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내며 기분 좋은 재발견을 일궈냈다.
신현빈은 지난 11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얼굴'(감독 연상호)에서 베일에 감춰진 영화 속 미스터리의 주인공이자 40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정영희로 분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작품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박정민·권해효 분)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박정민 분)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부산행' '반도'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40년 전 실종된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가 발견됐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은 임동환은 사진 한 장 없이 장례를 치른다. 그러다가 장례식장을 찾아온, 존재조차 몰랐던 이모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다.
이어 임동환은 어머니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경찰의 말을 듣고 아버지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김수진(한지현 분)과 함께 정영희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한다. 두 사람은 외가 가족들을 시작으로 40년 전 정영희와 함께 청계천 의류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가려졌던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렇게 '얼굴'은 총 다섯 번의 인터뷰를 통해 정영희의 얼굴과 죽음에 얽힌 이중의 미스터리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 중심에 있는 정영희는 앞을 못 보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시각예술을 하는,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국 근대사를 상징하는 임영규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캐릭터다. 또한 연상호 감독이 작품에 담은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메시지를 관통하는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연기한 신현빈은 러닝타임 내내 위축된 뒷모습이나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으로 다 가려진 얼굴의 실루엣 정도만 드러낸 채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을 소화한다. 그는 인물이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 등의 처절하고 쉽게 잊을 수 없는 여러 감정을 오직 어눌한 말투와 목소리의 높낮이, 손과 어깨 등 몸짓의 미세한 떨림으로만 섬세하게 표현하며 얼굴 없이 작품의 한 축을 책임진다.

자신의 얼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감정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얼굴을 배제하면서도 관객들이 끝까지 따라올 수 있게끔 몰입도 있는 연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기 있는 도전을 펼친 신현빈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며 놀라운 캐릭터 소화력과 분석력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타인으로부터 생긴 상처가 많지만 선함과 정의를 잃지 않는 개인을 넘어 사회 속 불편한 정의로서 존재하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010년 영화 '방가? 방가!'로 데뷔한 신현빈은 2020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장겨울 역을 맡아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후 그는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재벌집 막내아들' '사랑한다고 말해줘' '새벽 2시의 신데렐라', 넷플릭스 '계시록' 등에 출연하며 주연 배우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으나 이렇다 할 굵직한 활약을 남기지 못하며 다소 아쉬운 행보를 이어왔다.
그러던 중 '얼굴'을 만난 신현빈은 어렵고 두려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얼굴이 없어도 충분히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며 필모그래피에 유의미한 한 줄을 새겨 넣게 됐다.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우로서 한층 더 확장되고 열린 생각을 갖게 됐다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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