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안보현이 강인하고 센 바이브가 아닌 순수하고 무해한 얼굴로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하나에 갇히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꽉 잡고 있는 그는 '악마가 이사왔다'로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배우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안보현은 지난 13일 스크린에 걸린 '악마가 이사왔다'(감독 이상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개봉을 앞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찍은 지 2년 정도 돼서 휴대폰의 앨범을 보듯이 추억에 빠져서 봤다. 감독님의 의도나 해석이 보여서 여운이 남고 뭉클하고 힐링되는 순간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내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 분)를 감시하는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 분)의 영혼 탈탈 털리는 이야기를 담은 악마 들린 코미디로, 데뷔작 '엑시트'(2019)로 942만 명의 관객을 사로잡았던 이상근 감독의 신작이다.

극 중 길구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는 청년 백수로,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의 특별한 비밀을 듣게 되고 그의 보호자가 되는 험난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이를 연기한 안보현은 밤마다 선지를 보호하는 듬직한 도베르만 같은 모습부터 선지의 기에 눌려 복종하는 골든 리트리버의 면모까지 드러내며 지금껏 보지 못한 결의 얼굴로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강인하고 남성미가 센 캐릭터들을 연기했는데 제가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계속한 건 아니었어요. 이번에도 제가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라서 잘 해낼 수 있겠다는 것보다 도전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변화를 주는 제 자신이 궁금했어요."
연기적으로 시도해본적 없는 유형의 캐릭터였지만 실제로는 길구와 닮은 지점이 꽤 있다는 안보현이다. 과거를 회상한 그는 "운동을 오래 했으니까 직업군인을 할지 아니면 새롭게 시작한 연기를 계속할지의 기로에 서 있었던 때가 있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부담 등의 걱정도 있었다"며 "또 내성적인 편이었다. 복싱을 오래 했는데 개인적인 운동이다 보니까 누구와 소통하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채찍질을 많이 했는데 이런 점이 길구와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JTBC '이태원 클라쓰'를 비롯해 워낙 강렬하고 센 캐릭터를 주로 소화했던 안보현이기에 "테토남보다 에겐남에 더 가깝다"는 그의 말을 곧바로 다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취재진의 반응을 본 안보현은 "세게 생겨서 웃고 다니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온오프가 달라서 혼자 있을 때는 강인하지 않다"며 "생긴 것과 다르게 굉장히 디테일하고 혼자 요리해서 먹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한다. 청소하는 것도 좋아하고 이불 빨래도 꼬박꼬박한다"고 덧붙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과 달리 소심하고 순진한 면모를 지닌 길구다. 이에 안보현은 그레이톤에 가까운 의상을 주로 입고 메이크업도 거의 안 하면서 꾸밈없는 외적 비주얼을 완성했고 조금은 바보 같아 보이는 눈과 입을 동그랗게 만드는 'O 표정'부터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까지 여러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인물 그 자체가 되어갔다. 생각보다 더 디테일했던 이상근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길구는 자기 치장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그런 부분을 내려놓고 편하게 촬영했어요. 말투도 어눌하고 고장 난 것 같은 부분을 가져가면서도 밤선지를 만날 때 일반화되는 부분을 신경 써서 연기했고요. 감독님도 '왼쪽 눈썹 들어볼까요' '시선 낮춰볼까요' 등 정말 디테일하게 디렉팅을 하셨어요. 친해지면 말을 엄청 많이 하시는데 그런 부분이 저와 비슷해서 만나면 카페에서 2~3시간씩 얘기를 나눴어요.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동네형처럼 무해한 현실 길구같은 분이시죠."
그동안 주로 보여줬던 강렬함을 잠시 내려놓고 순박하면서도 우직한 면모를 꺼낸 안보현은 보는 이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함과 동시에 인물의 성장을 응원하게 만드는 열연을 펼친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결을 넓힌 자신의 활약을 본 소감도 들어봤다.
"제가 억울한 표정을 잘 짓더라고요(웃음). 그게 잘 전달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선한 역할이라고 해서 더 편한 건 없었는데 길구의 의도치 않은 말투로 인해서 웃음을 유발하는데 현장에서 저의 연기를 보시고 웃는 스태프들을 보니까 선한 역할의 영향력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같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게 있었어요. 강한 것도 좋지만 선한 캐릭터의 좋은 점을 새롭게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안보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임윤아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그는 "정말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어제 본 사람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털털하고 사람 냄새나고 유머 감각이 넘치고 센스가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밤이 되면 악마로 깨어난다는 신선한 설정 위에 남녀주인공의 간질간질한 케미부터 가족애까지 쌓아 올리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특히 첫 눈에 선지에게 반해 그의 앞에서 계속 뚝딱대다가도 완전히 다른 성격의 밤선지와는 환상과 환장을 오가는 티키타카를 보여주면서 점차 내면의 변화를 겪는 길구가 자신이 갖고 있는 내면의 아픔도 들여다보고 극복하는 과정도 담겨 있다. 그렇기에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기 어렵다는 시선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러한 작품의 중심축이 된 안보현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저는 길구의 성장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과도 그렇게 소통했고요. 고장 나고 누구에게 해소도 못 하는 친구가 선지를 만나 황당한 일을 겪게 되면서 누군가를 구원해 내기까지, 길구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느끼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취미로 인형 뽑기를 하다가 나중에 크레인 기사가 되잖아요. 취미가 직업이 됐다는 걸 넘어서 자기가 잃어버린 길을 찾은 거죠."
2007년 모델로 데뷔한 안보현은 2016년 영화 '히야'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녀의 사생활' '이태원 클라쓰' '유미의 세포들' '마이 네임' '군검사 도베르만'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재벌X형사',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베테랑2'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면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고 주연배우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제가 그려왔던 인생 그래프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길구도 제가 자신 있었던 게 아니라 반신반의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만큼 도전하는 입장으로 한 거였는데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도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마음먹었던 것처럼 계속 여러 장르에 도전하면 선입견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채로운 색깔의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안보현은 '악마가 이사왔다'로 여름 극장가에 출격하며 여전히 대목으로 여겨지는 시기에 자신의 주연작을 걸게 되는 뜻깊은 행보를 추가하게 됐다. 이에 그는 "끝났을 때 여운이 남고 캐릭터들이 좋은 길을 찾아갔다는 걸 인지하면서 여운이 남고 힐링 되는 영화"라며 "어딘가에는 분명 길구같은 사람이 존재할 거고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을 텐데 인상 찌푸리지 않고 편안하게 보면서 힐링하고 치유하셨으면 좋겠다"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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