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쨍하고 햇뜰날'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타계했다. 향년 78세.
아내 이정심씨에 따르면 송대관은 이날 오전 설사 증상으로 긴급히 서울대 응급실로 실려가 치료를 받던 중 심장마비로 갑자기 숨졌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고인은 위암 수술 등 큰 수술을 세 차례 진행했으나 굳건한 의지로 건강을 회복해 최근까지도 가수 활동을 해왔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가요계 선후배들은 그의 갑작스런 사망에 더욱 안타까워 하고 있다.
송대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의 대표 히트곡 '해뜰날'처럼 좌절과 절망을 딛고 극적으로 꽃을 피웠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일어서는 그의 오뚝이 인생에 팬들은 '저력의 국민가수'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가수의 삶을 살아온 지 올해로 58년째, 반세기를 훌쩍 넘겨 60년 가까이 활동했다. 1967년 정통 트로트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이후 '세월이 약이겠지요' '해뜰날'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정상급 가수로 부상했다.
송대관은 39년 전 돌연 처갓집이 있는 미국 이민을 결심한다. 당시는 '해뜰날' 등이 히트한 뒤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기다. 미국에서 그는 처가의 넉넉한 경제력을 등에 업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100만 달러를 투자한 초대형 슈퍼마켓에 이어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바로 인근에서 최고급 이탈리안 식당을 운영했다. 사업은 무난했지만 늘 허전했다.
송대관을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건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고국을 향한 짙은 그리움과 향수다. 10년 만에 귀국한 뒤 그는 '혼자랍니다' '정 때문에' '차표 한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네 박자' 등을 순차적으로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한다.
승승장구하던 송대관은 아내의 사업실패로 또다시 벼랑 끝에 내몰린다. 뒤늦게 억울함을 풀었지만 부동산개발 사건에 연루되면서 무려 145억 원의 빚을 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시련에 굴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보장한 10년 회생 기간(탕감+변제)을 불과 2년 만에 털어냈다.
그는 누구보다 롤러코스터를 많이 탄 가수다. '쨍'하고 '해'가 뜨면 고비를 맞고 다시 일어섰는가 싶으면 또다시 고비를 맞았다.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이후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무명가수로 전전하다 자신의 신세와 처지를 애절하게 담은 '세월이 약이겠지요'(71년)를 불렀다. 직접 작사한 최초의 곡이다.
방송 출연량이 늘어날 즈음 '해뜰날'(1975년)을 불렀고 그가 "내 인생도 쨍하고 해뜰날 있다"는 심경을 담아 발표한 곡으로 오랜 무명가수에 대한 동정론과 함께 당시 사회 분위기 속 민초들의 마음에 공감대를 얻으면서 대 히트를 기록한다.
이후엔 그가 직접 작사한 곡들은 대부분 자신의 심경을 빗댄 노래들로 채워지고, 어김없이 히트로 이어졌다.
송대관은 유명한 독립운동가 자손이기도 하다. 그의 친할아버지 송영근 선생은 1919년 전북 태인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수천 장을 등사해 나눠주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2년 그의 공훈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송대관은 독립유공자 후손 자격으로 2006년 광복 61주년 기념 보신각 타종 행사에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