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대법원서 걸려온 전화…판사는 '연임'을 걱정했다
  • 송주원 기자
  • 입력: 2020.06.23 00:00 / 수정: 2020.06.23 00:00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2018년 10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2018년 10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사법농단' 임종헌 50차 공판…'직권 취소' 배석 판사 증언대에[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 시절, 대법원 연락을 받고 결정을 취소한 재판부의 배석 판사였던 법관이 "잘못을 상급 기관에서 교정해 준 거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소속 법원 기획법관을 통해 대법원의 연락을 받은 뒤 "연임을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 심경을 전했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0회 공판기일에는 2015년 서울남부지법에서 판사로 재직한 A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선 A 판사는 2015년 민사11부의 좌배석 판사를 지냈다. A 판사가 서울남부지법에 부임한 지 두 달이 지난 2015년 4월, 묵힐 대로 묵힌 한 소송 사건을 접하게 된다. 한 사립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공중보건의로 근무한 기간을 교직원 재직 기간에 합쳐 달라며 낸 소송이었다.

소송이 접수된 건 2011년이었다. 사건이 늘어질 동안 2014년 5월 헌법재판소(헌재)는 유사 사건에 합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A 판사와 재판장이었던 염기창 부장판사는 오랜 법정 싸움을 해온 신청인을 구제할 방법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단순위헌 취지로 헌재에 올리자니 1년도 안 된 헌재의 합헌 결정에 따른 부담이 컸다. 민사11부가 내린 결론은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2015년 4월 8일의 일이었다.

이틀 뒤 A 판사는 서울남부지법 기획법관에게 "이건 대법원에서 인정하지 않는 형태의 결정이다. 헌재가 이를 이용해 신문에 기사를 내거나 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13일, 염 부장판사는 A 판사에게 "A 판사, 기분 나쁘겠지만 취소합시다"라고 말했다. 민사11부는 원결정을 직권 취소했다. 원 결정문 역시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서 자취를 감췄다.

검찰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등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심판제청 결정을 한 민사11부의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전산상 검색도 되지 않도록 했다고 본다. 헌재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한정위헌 결정이란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단순위헌 결정과 달리, 법원의 조항 해석이 위헌적이라는 취지의 결정이다.

오로지 양심과 법률에 따라 판단해야 할 법관이 양 전 원장 등 고위 대법관들의 압력 때문에 결정을 물렀다는 설명이다. 헌법이 수호하는 법관의 독립성을 대법원이 건드릴 수 있었던 무기는 바로 법관 인사다. 특히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코스는 '대법관으로 가는 길'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사권을 쥔 대법원의 압력을 일선 법관으로서는 거스를 수 없었다는 것이 공소사실의 배경이다.

이날 증언대에 선 A 판사는 '법원행정처에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어떠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면서도 "당시에는 취소할 수 있는 종류의 결정이라 생각했다. 통상 증인에게 과태료 부과를 결정한 뒤 구두로 취소하는 때도 있어서, 저는 (취소) 할 수 있는데 다만 (결정이) A로 가느냐, B로 가느냐의 문제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 판사는 "제가 뭔가 잘못해서, 잘못된 행동을 해서 상급 기관이 나를 교정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취소 당시 마음의 거리낌이나 부담은 없었느냐'는 질문에도 A 판사는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게 기분은 나쁘지만 제가 이상한 행동할 뻔한 걸 선배님들이 '너 그러는 거 아냐'라고 해주셨다고 생각했다. 취소를 권유했다는 생각은 못 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과는 결이 다른 증언을 했다. 압력이 아닌 교정을 받았고, 부당함보다 자신이 잘못한 걸 가르쳐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에서 헌법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재판장인 염 부장판사에게 직접 연락을 취한 이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이었다. 이날 A 판사의 증언은 이 전 실장이 지난달 7일 양 전 원장 등의 재판에 나와 "'착오'로 위헌제청 결정을 했고, 이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큰 경우 재판부에 알려줄 필요는 있다"고 한 말과 유사한 취지다. 이 사건 피고인인 임 전 차장 측 역시 대법원 판례상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기속력이 없어서 대법원은 민사11부의 결정에 대해 '귀띔'을 해줄 수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더해 변호인은 이 전 실장이 속한 양형위원회와 법원행정처는 전담한 업무가 달라 이 사안에 임 전 차장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변론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A 판사는 '선배님'들에게 유리한 취지의 증언을 했지만, 대법원의 전화를 받은 직후 자신과 재판장의 인사를 걱정했다는 당시 심경도 전했다.

검찰: 금요일(2015년 4월 10일) 기획법관에게 얘기를 듣고 "주말 내내 직권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재판장인 염기창 부장판사의 입장도 신경 쓰였습니까?

A 판사: 네, 무척이요. 개인적으로도 지하철 타면서 남편에게 전화해 "연임(법관이 10년의 임기를 마치고도 법관직에 머무르는 것)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검찰: 누구의 연임이요?

A 판사: 저요.

검찰: 이 결정한 것 때문에요?

A 판사: 네.

어쩌면 임관 4년 차였던 A 판사보다 인사에 사활이 걸렸을 염 부장판사의 안위도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검찰: 기획법관에게 연락받고 염기창 부장판사가 잘못될까 걱정됐나요?

A 판사: 염 부장님이 중앙(서울중앙지법)에서 형사부장하고 승진 안 된 상태로 남부(서울남부지법)에 오셨어요. 아직은 약간 고법 부장 되실 기회가 있으신 것 같았는데…. 약간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염려됐어요.

검찰: 이후 염 부장판사가 증인을 불러 기분 나쁘겠지만,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조심스럽게 말한 사실이 있나요?

A 판사: 네.

검찰 :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판단을 계속 살펴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나요?

A 판사: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그때 제가 임관한 지 얼마 안돼서 "감히 내 결정 간섭해?"라는 생각보다 "어, 뭐가 내가 잘못했나 봐" 이런 마음이 좀 더 있었습니다.

임 전 차장의 공판은 23일 오후 2시 속행된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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