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여정 "오래 한다고 잘하는 건 아냐"
[더팩트 | 김경민 기자] "이해한 대로 표현하면 되지."
윤여정(69)이 배우라는 직업을 이름 앞에 달고 지낸 시간이 어느덧 50년, 그에게 연기는 더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잠이 드는 일상처럼 연기자의 생활이 곧 삶이었던 그에게 연기는 피부와 같았다.
윤여정은 최근 영화 '계춘할망'과 케이블 채널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특히 '계춘할망' 속 계춘 할머니는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을 장악한 대차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7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할머니 캐릭터를 맡는 게 전혀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윤여정의 사전에 주름을 깊이 새겨넣은 계춘의 얼굴은 또 새롭고 도전적이었다.
"내려놓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여배우가 아니라 노배우인데 여기서 흉해 봤자 얼마나 더 흉하겠나. 언제부턴가 촬영장에서 모니터를 보지 않는다. 모니터를 보고 나면 연기가 아니라 '이쪽 얼굴에 흉터가 더 나오는구나'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만 하더라. 최선을 다해도 될까 말까인데 그런 것까지 연구할 시간이 없더라."

윤여정에게 계춘 역은 이미지뿐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도전적인 캐릭터였다. 왕초 해녀 계춘을 위해 직접 해녀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기본, 뱀장어에 물리는 사고까지 겪었다.
"'계춘할망'은 잔잔한데 몸은 진짜 고생했다. 뱀장어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는 장면에서 뱀장어에게 물렸다. 가짜 해녀가 진짜 해녀인 척하려니까 고생이지. 해녀복도 굉장히 두꺼워서 목을 죄니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더라. 분장도 힘들었다. 할 때는 몰랐는데 머리카락은 옥수수수염이 됐다. 배우는 참 슬픈 직업이다. 진짜가 아닌 사람이 진짜가 되려고 하는 거잖아."
그가 풀어놓는 고생담에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후 보냈던 시간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프고 치열하게 겪은 게 많다"고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그 무게까지 가볍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전부터 배우는 억지로 입은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으로 일이 없고 수입도 없으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줄도 모르는 내가 어떡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미 나는 바보가 됐다. 나도 모르게 셀러브리티가 됐고 일상적인 생활을 못 한다. 배우 옷을 벗기엔 너무 오래됐다. 기억력이 있고 대사를 외울 수 있는 한 배우 옷을 입고 싶다. 정말 배우가 됐나 보다."

윤여정이라는 이름은 나이를 떠나 멋진 여배우를 상징하는 하나의 마스터피스가 됐다. 정작 그는 '여배우'라는 단어에 선을 긋고 '노배우'로 칭했다. 느끼는 대로 표정을 짓고 흐르는 대로 연기를 해도 되는 연륜을 가진 노배우. 그렇다고 편하게 안주하는 것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호수 위 우아한 백조도 물 아래로는 열심히 발로 노를 젓는 것처럼 말이다.
"'여배우'라는 말이 싫다. 예뻐야 하고 화려해야 하잖아. 화려한 게 겸연쩍다. 레드카펫 밟는 것도 거추장스럽고 굉장히 힘들다. 여배우임을 거부하나 보다(웃음).
이제 겁날 건 없다. 방탕해진다면 축하할 일이지. 자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품 하고 싶다. 나 싫다는 사람한테 좋아해 달라고 할 필요 없다. 그렇지만 인생은 '서프라이즈'다. '계춘할망'에 출연할 줄도 몰랐고 계획대로 안 된다.
다만 연기 잘하는 신인을 볼 때 제일 무섭다. 처음, 신선하다는 게 무섭다. 처음은 한 번밖에 없지 않나. 가끔 어떤 걸 할 때 이미 몸에 젖어버린 습관화 된 게 있다. 그럴 땐 오염된 것 같다. 그래서 좋은 감독을 만나길 바란다. 감독이 나를 변화시키거나 지적해주고 고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오래 한다고 잘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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