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모두 응원해줘 감사"
[더팩트|권혁기 기자] 칸이 사랑한 감독, 연출작마다 화제를 몰면서 충무로에 활기를 불어 넣는 감독,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 배우를 존중하고 캐스팅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감독이라고 하면 박찬욱을 꼽을 수 있다. 그런 박찬욱 감독에게 발탁된 신예 김태리(26).
김태리는 행운아일까? 아니다. 김태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15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아가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용필름)의 타이틀 롤을 따냈다. 타이틀 롤이라고 한 이유는 '아가씨'의 영문 제목이 'The Handmaiden' 즉, 하녀이기 때문이다.
'아가씨'에서 하녀 숙희 역을 맡은 김태리를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신인이지만 아주 당찼다. 처음 하는 인터뷰라 어색할 법도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털털함이 느껴졌다. 두 살 터울 오빠가 있기 때문일까? 시원시원했다.
첫 장편 데뷔작부터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김태리에게 완성된 '아가씨'를 본 소감을 물었다.
"프랑스 칸에서 시사회로 보고, VIP시사회로 보고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총 세 번을 봤는데 처음에는 객관적으로 보질 못했어요. 제 연기 보기 바빴죠. 두 번째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겠더라고요. 제가 참여하지 않은 신(scene)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죠. 소품 하나하나, 인물 표정 하나하나가 다 새로웠어요."

2015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된 단편 '문영'(감독 김소연)을 통해 영화를 경험했지만 본격적인 영화는 '아가씨'가 처음이다.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에 대해 "작품은 거의 다 봤다"며 "실제로 보니까 귀여운 면도 있으시고 정이 많으셨다. 제 또래 딸을 기르고 계셔서 그런지 매우 친근하고 편하게 대해 주셨다. '아가씨'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박찬욱 감독님이니까'가 컸다. 그만큼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김태리가 연기자를 꿈꾼 것은 꽤 늦은 나이였다.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김태리는 대학에서 연극동아리를 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즐거움을 알게 됐다. 계속하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로에 갔다. 극단 이루에서 '사랑을 묻다' '넙쭉이' '팬지' 등의 작품을 소화했다. 주변에서 만류도 있었다.
"사실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윤곽을 잡은 게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연극배우를 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만류를 하더라고요. 그래도 '연기에 대한 배고픔'이 더 컸죠. 돈을 못 번다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계속 연기를 해왔죠. 처음에는 영화 작업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분위기부터 달랐고요. 연극은 영화보다 사람 중심이고 좀 더 뭉쳐서 '으쌰으쌰'하는 게 있는데 영화는 전문적이고 세부적이잖아요. 각자 자기 분야가 있고 팀이 있는데 그런 각각의 것들이 모여서 조화를 이루니까요. 연극에서는 배우도 스태프처럼 이런저런 일도 해야 하죠. 청소도 하고, 포스터도 붙이고요. 그런 부분에서 배우 본연의 일에 치중하게 해주시더라고요."

그래도 불안한 마음과, 확신이 서지 않는 자신을 느꼈다. 캐스팅 후 크랭크 인까지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촬영 중에도 생각할 시간은 많이 주어졌고 이런저런 부담감이 엄습했다. 영화 촬영용 카메라의 원리를 알아야 했고 상대 배우뿐 아니라 카메라와도 합을 맞춰야 했다. 움직이면 안 되는 클로즈업 때 몸을 흔들어 혼이 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다 보니 불안했어요. 그럴 때마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 했던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배우는 거다. 내가 뭐라고, 최고의 경지를 보여 드리는 게 아니다. 경험의 의미가 크다'라고요."
그 첫 경험부터 파격적인 노출과 함께 동성(同性) 베드신이라니. 여배우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 가족들에게 민망하지는 않았을까? "가족들은 거의 다 보셨다"는 김태리는 "오히려 부모님은 캐스팅됐을 때부터 좋아하셨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애착이란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부모님은 '네 삶인데, 배우를 할 거면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면 당연히 좋은 거 아냐? 작품도 좋은데?'라고 말씀하셔서 놀라긴 했다. 딸의 꿈을 이해해 주신 것 같다"고 회상했다.
배우를 업으로 삼기로 했으니 베드신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부분일까? 김태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라면 이 정도는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노출에 대해서는 시나리오를 보고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디션 공고(노출과 관련해 협의할 수 없음)를 보고 결심하고 시나리오를 봤으니까요. 그런 부분을 더 유심히 봤어요. 정말 이야기에 필요할까? 저는 충분히 설득당했죠. 이야기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결정한 거죠. 이번에 노출했으니 다음에도? 그런 건 미리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작품의 내용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뚜렷한 주관을 가진 김태리, 그가 선택할 차기작은 무엇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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