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세 번, 관객 허 찌르는 스릴러 '아가씨'
  • 권혁기 기자
  • 입력: 2016.06.02 05:00 / 수정: 2016.06.01 17:22

박찬욱 감독 신작 아가씨 영화 아가씨가 1일 개봉됐다. /영화 아가씨 포스터
박찬욱 감독 신작 '아가씨' 영화 '아가씨'가 1일 개봉됐다. /영화 '아가씨' 포스터

배우들 호연+완벽한 연출+뛰어난 미장센, 삼박자 맞은 웰메이드

[더팩트|권혁기 기자] 6월의 첫날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제작 모호필름·용필름)가 개봉됐다. 제69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박찬욱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아가씨'를 계기로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도 국제적인 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됐다.

'아가씨'는 세 번, 관객의 허를 찌른다. 그런데 그게 어렵지가 않다. 박찬욱 감독의 결이 살아 있으면서도 박찬욱 감독스럽지 않은 영화다.

145분의 러닝타임을 1, 2, 3부로 나눈 '아가씨'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이 된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에게 숙희(김태리 분)라는 소매치기 고아 소녀가 하녀로 가면서 시작된다.

숙희가 히데코의 하녀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사기꾼 고판돌(하정우 분)의 포석 중 하나였다. 후지와라 백작으로 변신한 고판돌은 히데코의 재산에 관심이 있었다. 히데코의 이모(문소리 분)가 벗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후 광부(曠夫)가 된 코우즈키는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큰 서재에 넣을 대량의 책들을 매입하기 위해 히데코와 결혼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고판돌의 '사기본능'을 일깨웠다.

백작 하정우와 아가씨 김민희. 하정우와 김민희는 아가씨에서 서로 속이고 속는 역할을 맡았다. /영화 아가씨 스틸컷
백작 하정우와 아가씨 김민희. 하정우와 김민희는 '아가씨'에서 서로 속이고 속는 역할을 맡았다. /영화 '아가씨' 스틸컷

남들은 책을 팔아 금을 산다는데 코우즈키는 금을 팔아 책을 사려는 독서광이었다. 문제는 '야릇한 독서광'이었다는 점이다.

코우즈키는 유명 인사들을 집으로 초청해 비밀 낭독회를 열었다. 자신의 아내로 하여금 음란 소설을 읽게 했다. 그냥 읽게 한 게 아니라 낭독만으로,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 후 읽게 했다. 흥분한 늙은 남성들은 낭독한 책들을 고가에 구입했다. 코우즈키는 히데코가 어렸을 때부터 아내와 함께 '음란 소설 읽기' 교육을 시켰다.

아내가 죽고 나자 더러운 낭독회는 히데코로 이어졌고, 낭독회에 참석했던 후지와라 백작은 히데코에 측은지심과 함께 약간의 사랑을 느꼈다. 백작의 계획은 이렇다.

히데코의 마음을 훔쳐, 코우즈키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일본으로 건너가 결혼식을 올려 법적으로 부부가 된 뒤 히데코를 일본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재산을 가로챈다는 속셈이다. 성공한다면 고판돌과 숙희, 그녀가 소속된 지역 최고 장물 거래소 보영당 모두 웃을 수 있는 계획이었다.

숙희는 히데코와 후지와라를 이어줄 중요 매개체였다. 전설적인 여도둑의 딸이기도 한 숙희는 이번 '사기'를 성공시키고 후지와라로부터 거액을 받기로 돼 있었다. 조선을 떠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떠나고 싶었던 숙희는 히데코에게 작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자꾸만 히데코가 작업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고, 정말로 가련하게 사는 아가씨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서워 잠을 잘 수 없다"는 아가씨와 한 침대에 눕게 되고, "나는 남자를 잘 모르겠다. 백작님이 어떻게 해야 좋아할까?"라는 히데코의 말에 "조금만 알려드리겠다"며 진한 키스와 함께 애무를 나눈다.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 아가씨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은 흠 잡을데가 없는 완벽한 연기를 뽐냈다. /영화 아가씨 스틸컷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 '아가씨'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은 흠 잡을데가 없는 완벽한 연기를 뽐냈다. /영화 '아가씨' 스틸컷

영화 '아가씨'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시대상이 제대로 반영돼 있다. 조선인이지만 몰락한 일본 귀족인 아내와 결혼해 신분상승을 꾀한 코우즈키는 당시 열강인 일본과 영국의 건축양식에 맞춰 저택을 지었다. 낭독회를 제외하고 항상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는 코우즈키는 일본식 저택에서만 기거한다.

순수 일본인인 히데코는 일상 대부분을 영국식 건물에서 서양식 복장을 입고 생활하지만, 낭독회에는 반드시 기모노를 착용한다. 히데코와 코우즈키의 대립을 알 수 있는 미장센이다. 고판돌과 숙희는 그 둘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조선'과 같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화차' 이후 연기에 물이 오른 김민희와 첫 장편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는 김태리의 연기호흡은 관객의 숨을 죽이게 만든다. 두 배우가 만나 일으킨 시너지 효과에 동성애 장면은 거북스럽지가 않다.

하정우는 '역시 하정우'라는 표현과 함께 엄지를 들게 만든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장점인 하정우는 고판돌과 후지와라 백작을 적절하게 오갔다. 젊은 코우즈키부터 늙은 후견인까지, 조진웅은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다. 펜 잉크를 묻혀 시커매진 혀를 낼름 거리는 연기를 보면 처조카를 탐하려는 미친 이모부가 느껴진다.

'아가씨'는 숙희의 시선에서, 그리고 히데코의 입장에서, 백작의 눈까지 3부로 나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은 세 번에 걸쳐 얽히고설킨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의 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관객들은 알면서도 친절한 설명에 허를 찔린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19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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