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미스터리' 여의도 벙커, 누가 왜 만들었나?
  • 이성락 기자
  • 입력: 2015.10.01 14:56 / 수정: 2015.10.01 14:56

여의도 비밀벙커 공개 서울시는 지난 2005년 버스환승센터 공사 중 발견된 여의도 비밀벙커를 1일 오전 개방했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여의도 비밀벙커 공개' 서울시는 지난 2005년 버스환승센터 공사 중 발견된 '여의도 비밀벙커'를 1일 오전 개방했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서울시, 여의도 비밀벙커 공개

한국 정치 1번지 여의도 지하에 수십 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미스터리 한 벙커의 문이 1일 열렸다. 40여 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지하 벙커'의 문이 열렸지만, 여전히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서울시는 이날 베일에 싸여 있던 '여의도 비밀벙커(비밀벙커)'를 개방했다. 2005년 버스환승센터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지 10여 년 만이다. 하지만 여전히 누가, 언제,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실체는 드러났지만, 의문의 역사는 좀처럼 풀리지 않은 채 궁금증만 증폭되고 있다.<더팩트>는 이날 오전 10시, 40여 년 만에 비밀의 문이 열리는 여의도 벙커 현장을 찾았다.

언론에 공개된 여의도 지하 벙커는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2번 승차장 옆에 있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오가는 이곳 지하에 벙커가 있을 것으로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버스 승강장과 연결된 벙커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약 200여 평의 지하 시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여의도 비밀벙커, 언제·왜 만들어졌나?

제1출입구 이날 개방된 비밀벙커 제1출입구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180여 평의 공간이, 오른편에는 20여 평의 공간이 있었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제1출입구 이날 개방된 비밀벙커 제1출입구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180여 평의 공간이, 오른편에는 20여 평의 공간이 있었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개방된 비밀벙커 제1 출입구를 기준으로 왼편으로 들어가니 180여 평(약 595㎡)의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강당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는 기계실, 화장실 등이 마련돼 있었다. 천장에는 석면 텍스트 지지대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비밀벙커에는 개방된 통로뿐만 아니라 폐쇄된 2개의 출입문이 더 있었다. 제 2출입구로 불리는 곳은 IFC몰 앞 보도 쪽으로 연결돼 있다고 서울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금은 회색 콘크리트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기계실 옆에 있는 어두컴컴한 제 3출입구로 발걸음을 옮기니 다소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니 입구는 나무판자로 막혀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출입구가 사유지와 연결돼 있어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개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제 1출입구를 기준으로 오른편에는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20여 평(약 60㎡)의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는 화장실과 샤워장이 마련돼 있었으며, 호피 무늬 소파가 떡하니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VIP 룸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20여 평의 공간에는 화장실과 샤워장 등이 마련돼 있었으며, 중간에는 호피 무늬 소파가 놓여 있었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VIP 룸'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20여 평의 공간에는 화장실과 샤워장 등이 마련돼 있었으며, 중간에는 호피 무늬 소파가 놓여 있었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견된 이 지하시설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겼다. 벙커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오랜 기간 비밀리에 존재해 왔다는 점에서 여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렇다면 비밀벙커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서울시는 비밀벙커의 공사 시점을 1976년에서 1977년 사이로 예상하고 있다.

이날 비밀벙커에 대한 설명을 맡은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서울시가 관리하던 항공사진을 분석했더니 1976년 11월 벙커 지역을 찍은 사진에는 공사 흔적이 없지만, 이듬해 11월 항공사진에는 벙커 출입구가 보여 이 시기에 비밀벙커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궁의 비밀벙커 공사 배경과 관련 서울시는 "대통령 경호용 비밀시설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 본부장은 1974년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예로 들며 "비밀벙커 위치를 보더라도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었던 곳과 거의 일치한다"고 말했다. 긴급 상황 시 단상이 비밀벙커로 가라앉도록 설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 '개방' 여의도 비밀벙커, 어떻게 활용될까?

비밀벙커, 활용방안은? 서울시는 오는 10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토·일요일 8일간 비밀벙커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전에 신청받은 제한된 인원만 관람할 수 있다. 서울시는 다음 해 10월 1일 비밀벙커를 전면개방할 방침이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비밀벙커, 활용방안은? 서울시는 오는 10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토·일요일 8일간 비밀벙커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전에 신청받은 제한된 인원만 관람할 수 있다. 서울시는 다음 해 10월 1일 비밀벙커를 전면개방할 방침이다. /여의도=배정한 기자

온갖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비밀벙커는 발견된 이후 10여 년 동안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벙커 발견 당시 여러 활용방안을 고민하긴 했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폐쇄한 것이다. 벙커는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실질적 관리나 활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올해 3월 현장조사를 벌인 서울시는 비밀벙커 전체가 30cm가량 침수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7월 구조물 안전 확인을 위한 정밀 점검을 했다. 그 결과 보수·보강이 필요하긴 하지만, 전반적인 시설물 안전에는 지장이 없는 C등급 상태로 확인됐다. 신체에 해로운 석면은 완전히 철거됐다.

김 본부장은 "(벙커가) 그동안 방치돼 있던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게 좋겠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어 활용을 계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지하벙커를 문화시설로 조성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일단 오는 10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토·일요일 8일간 비밀벙커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장소가 협소하고 안전문제 등을 우려해 사전에 신청받은 인원들만 관람을 추진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아직 전면개방하기 어렵다. 냉난방 시설을 갖추는 등 보수·보강 작업을 더 진행한 뒤 다음 해 10월 1일 개방할 예정"이라며 "지하벙커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해 역사적 특징을 보존하면서도 지역적 여건을 고려한 시민 공간으로 조성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더팩트ㅣ여의도=이성락 기자 rocky@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