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노의 스담스담] '스포츠 여신'은 왜 '너무 빨리' 팬들 곁을 떠나는가?
  • 이성노 기자
  • 입력: 2015.01.09 08:48 / 수정: 2015.01.13 11:17

신아영 SBS 스포츠 아나운서가 스포츠 외에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며 퇴사한 사실이 6일 알려지며 스포츠 팬들을 아쉽게 했다. /문병희 기자
신아영 SBS 스포츠 아나운서가 "스포츠 외에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며 퇴사한 사실이 6일 알려지며 스포츠 팬들을 아쉽게 했다. /문병희 기자

[더팩트ㅣ이성노 기자] 또 한 명의 '스포츠 여신'이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똑똑한 스포츠 여신'으로 많은 인기를 누린 신아영(27) 전 SBS 스포츠 아나운서가 방송국에 사표를 제출하며 사실상 '프리'를 선언했다.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팬들이 적지 않지만 크게 놀라워하지는 않는 눈치다. 결국 신아영 전 아나운서도 절차를 밟듯이 선배들의 길을 따라가며 '너무 빨리' 팬들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6일 오전 남성 스포츠 팬들에겐 '비보'와 같은 '프리 선언' 소식을 전한 신아영 아나운서는 '명문'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재원으로 지난 2011년 SBS ESPN(현 SBS 스포츠)에 입사했다. '스포츠월드', 'EPL 리뷰' 등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깔끔하게 진행하며 학벌, 얼굴, 몸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은 '엄친딸' 이미지로 단숨에 '남심'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지난해 12월 SBS 스포츠에서 그는 "스포츠 외에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며 스포츠계를 떠날 의사를 비쳤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등 방송인으로서 활동을 위해 퇴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선 "진행하고 있던 프로그램이 폐지됐고, 그러면서 쉬는 시간을 원했기 때문에 사표는 냈다"고 선을 그었다. 이로써 팬들은 또 하나의 '스포츠 여신'을 잃게 됐다.

'실력파'인 그를 스포츠계에서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스포츠팬들로선 분명 아쉬운 일이다. 신아영은 사실 축구판의 대들보 아나운서로 클 것이라는 기대를 팬들로부터 많이 받았다. 'EPL 리뷰' 프로그램 사회를 맡으며 축구 전문 아나운서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특별한 '영어 실력'을 스포츠에 잘 녹이며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공식 콘퍼런스 미디어 행사에서 사회자 겸 통역사를 맡아 당시 제이미 리글 맨유 아시아 사장의 귀와 입이 되어 깔끔한 진행을 했다. 또한 '화려한 스펙'에도 털털한 성격과 겸손한 자세를 보여 여자들도 좋아하는 '똑똑한 스포츠 여신'으로 자리를 잡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폭넓게 사랑을 받고 있던 터라 퇴사 소식에 대한 아쉬움은 배가 됐다.

최희는 과거 야구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최근엔 아나운서 타이틀을 벗고 연예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진석 기자
최희는 과거 '야구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최근엔 아나운서 타이틀을 벗고 연예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진석 기자

스포츠 팬들의 충격이 더 큰 이유는 신아영 전 아나운서의 '프리 선언'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선배들이 보였던 길을 똑같이 따라가고 있다. 김수한, 이정민, 김석류, 이지윤, 최희, 공서영 등 스포츠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포츠 여신'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롱 런'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 '스포츠 여신' 타이틀을 벗었다. 최근에는 3~4년마다 자동으로 스포츠 여자 아나운서가 싹 바뀌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변화가 심하다.

최희 공서영 신아영 아나운서를 비롯한 '스포츠 여신'들은 왜 좀 더 스포츠팬들과 '사랑'을 하지 못하는 걸까. 문제를 들여다 보면 팬들에게는 '사랑'의 대상인 '스포츠 여신'들이 방송계에서는 '을'에 불과하다는 점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직업 수명'이 이토록 짧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몇 년 사이 선망 직종으로 떠오른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지만, 실제로 일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삶과 달리 속을 들여다 보면 일의 강도가 매우 센 직종이 바로 스포츠 아나운서다.

과거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A씨는 꿈을 향해 좇기에는 현실이 절대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우선, 계속된 야근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 스포츠를 다루다 보니 어느새 야근은 당연한 일과가 됐다. 연중 내내 이어진 철야 근무에 '스포츠 여신들'은 지쳐갔다. 더욱이 돌봐야 할 가정까지 생긴다면 이중고, 삼중고를 겪게 되는 게 현실이다.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는 여느 남자도 버티기 힘든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차별 아닌 차별도 넘어야 할 산이다. 국외 출장이나 큰 이벤트가 있으면 방송국은 여자보다 남자 아나운서를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스포츠 전문 여자 아나운서'라는 직종 자체가 '신종 직업'에 가깝다 보니 아직까진 '믿음'과 '검증'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따른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주로 남자 아나운서들이 주요 현장에 나가게 되고, 여자 아나운서들은 '비주얼 담당'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모든 매체가 남자를 선호한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스포츠 자체가 '여자보단 남자'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아영 아나운서가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맨유 공식 콘퍼런스 미디어 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신아영 아나운서가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맨유 공식 콘퍼런스 미디어 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일반 방송인과 비교해 금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다는 것도 '스포츠 여신'을 힘들게 한다. 대부분 케이블 채널에 소속을 두는 스포츠 여자 아나운서들의 기본 수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다. '자원봉사'가 아닌 '업'으로 살아가는 이상 '금전'은 중요한 부분이다. '열정 페이'만으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이다.

퇴사를 결정한 스포츠 여자 아나운서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스포츠판'을 떠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열악한 환경이 있는 한 '스포츠 여신'의 수명이 길어지길 바라는 건 무리다. 스포츠 여신들이 카메라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얼굴이 점점 더 굳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미 스포츠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은 스포츠 여신들에 대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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