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종현(오른쪽)이 1일 필리핀 마닐라 몰오브아시아 아레나에서 열린 2013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 중국과 경기에서 이전롄의 레이업슛을 블로킹으로 저지하고 있다. / 스포츠서울 DB |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고 있는 2013년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에서 세대교체를 이룬 한국이 선전하고 있다. 2일 열린 조별 리그 2차전에서 2007년(일본 도쿠시마)과 2009년(중국 톈진) 대회에서 2연속 우승한 신흥 강호 이란에 65-76으로 졌지만 1일 1차전에서 대회 최다(15) 우승국 중국을 63-59로 잡아 12강이 겨루는 2라운드 진출을 사실상 확정했다. 3일 경기에서 약체 말레이시아를 꺾으면 1승1패의 전적을 안고 2라운드에서 8강 진출 여부를 가리게 된다. 이란 카자흐스탄(이상 확정) 한국 중국 인도 바레인이 겨룰 것으로 보이는 F조와 일본 카타르 홍콩 대만 필리핀(이상 확정) 요르단 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 E조에서 상위 4개 나라가 8강이 싸우는 녹다운 라운드에 오른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결정된 FIBA 랭킹과 김주성과 양동근, 김종규와 이종현 등이 신구 조화를 이뤄 이번 대회에 나선 대표팀의 경기력을 고려해 볼 때 한국(33위)은 카자흐스탄(47위), 인도(58위), 바레인(75위)을 제치고 F조 2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비교적 전력이 약한 나라들이 모여 있는 E조 3위와 4강행을 다투게 된다. 4강에서는 E조 1위와 맞붙게 된다. 강호 이란, 중국과 조별 리그 같은 조에 들었기에 8강전 이후 대진이 덜 부담스럽다.
조별 리그 2차전까지 결과와 2라운드 조 편성을 살펴보면 3위 안에 들어 내년 9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FIBA 농구 남자 월드컵(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겠다는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꽤 있어 보인다. 내년 대회에는 개최국 스페인과 런던 올림픽 우승국인 미국, FIBA 오세아니아선수권대회를 통과한 호주와 뉴질랜드가 이미 출전권을 확보했다. 앞으로 유럽(6장), 미주(4장), 아프리카, 아시아(이상 3장) 등 대륙 예선 결과와 와일드카드 4장이 확정되면 24개 나라가 17번째 남자 농구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겨루게 된다.
한국으로서는 1970년 유고슬라비아 대회(11위/13개국) 이후 1998년 그리스 대회(16위/ 16개국)까지 통산 6차례 출전한 이후 맥이 끊겼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사를 이어 갈 좋은 기회를 맞았다.
신동파가 대회 득점 1위(경기당 평균 32.6점)에 오르는가 하면 역대 대회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인 11위에 오른 1970년 대회에 나서기 전까지 남자는 1967년 세계선수권대회(체코슬로바키아) 준우승, 그해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도쿄) 우승에 빛나는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져 있었다. 1960년 제1회 대회(필리핀)가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필리핀과 대만, 일본에 밀려 3위와 4위에서 맴돌다 1967년 서울에서 열린 제4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준우승했다.
힘들게 출전한 올림픽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의 성적을 남겼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아시아 나라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인 8위(필리핀 12위, 이란 14위, 중국 18위, 이라크 22위)를 기록하며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하면서 참패했다. 결과적으로는 불발됐지만 도쿄 올림픽은 1945년 남북 분단 이후 남과 북이 국제 대회에서 대규모로 맞붙는 첫 번째 대회였다.
농구는 대회에 앞서 세계 예선을 치러야 했는데 그때 분위기로 봐 단체 종목인 농구는 꼭 본선에 나서야 했다. 경쟁 종목인 축구는 1963년 11월부터 1964년 3월까지 진행된 아시아 예선에서 이란, 북한과 함께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요코하마에서 열린 세계 예선에는 10개 나라가 출전했는데 한국은 6승3패로 4위를 차지했고 이집트와 체코슬로바키아가 대회를 보이콧하면서 생긴 빈자리에 캐나다와 함께 끼어 드는 행운을 안았다. 그런데 문제는 본선이었다. 개최국이자 한국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한 A조의 일본은 이탈리아를 72-68로 잡는 등 3승4패로 조 6위에 오르며 선전했으나 한국은 우루과이에 64-105, 유고슬라비아에 66-99, 미국에 50-116으로 지는 7전 전패로 B조 꼴찌가 됐다. 13~16위 결정전에서도 헝가리에 83-99, 페루에 66-71로 패해 최하위인 16위가 됐다. 남자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문제는 1960년대 초반 농구 관계자들이 풀어야 할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그런데 이때 40년 뒤에나 나타나야 할 거스 히딩크 같은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1965년 남자 국가 대표팀 코치를 맡은 미 제8군 소속 찰스 마콘 소위였다. 미 제8군 사령부가 대한농구협회에 코치로 추천한 마콘 소위는 미국 대학 농구의 명문 데비이슨 칼리지의 주전 가드 출신이었다. 와일드캐츠란 별명을 갖고 있는 데이비슨 칼리지는 1964~65년 시즌을 앞두고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전미 대학 랭킹 1위로 꼽을 만큼 196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농구 본고장의 명문대 출신 젊은 장교는 열과 성을 다해 한국 남자 농구 대표 선수들의 훈련을 도왔다. 미 제8군 체육관에서 하는 훈련에서 맨투맨에 가까운 매치업 존 디펜스를 가르쳤다.
1967년 마콘 소위가 한국을 떠나자 그의 자리를 제프 거스플 중위가 이어받았다. 거스플 중위는 페어레이 딕킨슨대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한 ‘농구인 군인’이었다. 이들의 노력과 함께 미 제8군은 1968년 1월 남자 농구 대표팀의 미국 캐나다 원정을 지원했다. 이인표 신동파 김무현 김인건 유희형 박한 최종규 신현수 곽현채 김정훈은 미군이 제공한 군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 본고장 농구를 익혔다. 북미 원정에 코치로 참가한 거스플 중위는 이후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끝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마콘 소위와 거스플 중위가 떠난 이후 한국은 1969년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태국)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이듬해 세계선수권대회에 처녀 출전했다. 그리고 그해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회 사상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마콘 소위와 거스플 중위는 '50년 전의 히딩크'였다.
더팩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