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턴수첩] 한국은 이치로를 왜 '나쁜놈'으로 만들려 하는가
  • 유재영 기자
  • 입력: 2013.06.21 16:53 / 수정: 2013.06.21 16:53
20일 뉴욕 양키스의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망언 논란에 휩싸였다. / MLB.com 캡처
20일 뉴욕 양키스의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망언 논란'에 휩싸였다. / MLB.com 캡처

[유재영 인턴기자] 20일 새벽. 경기 전부터 화제가 된 한일 맞대결에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6·LA 다저스)이 스즈키 이치로(40·뉴욕 양키스)에게 3타수 2안타(1홈런) 1타점을 내주며 판정패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기자도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일전에서 패배는 언제나 가슴이 쓰리다.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경기를 되돌아보려는 순간 이치로가 '망언'을 했다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 "이치로가 류현진의 공을 눈감고 쳐 홈런을 터뜨렸다"고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치로가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먼저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확인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와 외신들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치로가 했다는 발언은 '그냥 과감하게 휘둘렀다'는 것을 한 언론이 앞뒤 맥락 없이 직역하면서 낸 과장 보도로 밝혀졌다. 언제나 화제가 되는 '한일 라이벌 관계'에 불을 지피기 위해 오버한 것이다. 이치로는 잠깐이지만 한국에서 또 한 번 '나쁜놈'이 돼버렸다.

이치로의 망언은 맥락 없이 직역하면서 낸 과장 보도로 밝혀졌다. / DAUM 캡처
이치로의 망언은 맥락 없이 직역하면서 낸 과장 보도로 밝혀졌다. / DAUM 캡처

이치로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몇 개 있다. '타격 기계', '레이저 송구', '일본의 레전드', '최고의 톱타자' 등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에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해 8시즌 연속 3할 타율, 200안타, 100득점, 30도루를 달성하며 명예의 전당 입성을 사실상 예약했다. 꾸준한 자기 관리로 불혹의 나이에도 현역에서 맹활약하는 이치로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를 보는 순간 '망언'이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이치로가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을 앞두고 한 발언이 큰 화제가 됐었기 때문이다. 인턴인 나도 7년 전 이치로의 발언을 뚜렷이 기억한다. 당시 그는 "한국은 30년 동안 일본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고 호언장담했고, 이치로의 발언을 들은 한국 네티즌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분노했다. 이치로를 욕하기도 하고 '입치료'라는 악명을 붙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당시 기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하지 못한 채 기사만 보고 그를 욕한 기억이 있다.

한국인들에게 망언 이미지로 낙인 찍힌 이치로. / MLB.com 캡처
한국인들에게 '망언' 이미지로 낙인 찍힌 이치로. / MLB.com 캡처

하지만 사실 이때도 이치로가 말한 의미가 잘못 전달됐다. 그는 "앞으로 일본과 경기하는 나라들이 30년은 이길 수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확실하게 이기고 싶다"고 말한 것인데, 일부 한국 언론의 전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이치로는 천하의 '나쁜놈'으로 낙인 찍혀 지금까지 그 이미지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사실에서 이어진 숙명의 라이벌 관계가 있다.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한일전이 펼쳐지는 날이면 모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언론에서는 한일 대결에 집착해 과장해서 보도하면서 일본 선수를 '나쁜놈'으로 만들기도 한다. 라이벌 관계는 분명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장 보도는 지양해야 옳다. 오히려 양국 스포츠 발전에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기자생활을 시작한 만큼 한일전을 스포츠 그 자체로만 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치로처럼 이유 없이 '나쁜놈'이 되는 것을 보고 더 확실히 느낀 부분이다.

w10btj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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