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人] '성남 큰 형님' 김한윤 "긱스·스콜스 나이 검색해봤다" ②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3.05.15 08:02 / 수정: 2013.05.15 08:03
K리그 최고령 필드플레이어 성남 일화 김한윤. / 사진 = 임영무 기자
K리그 최고령 필드플레이어 성남 일화 김한윤. / 사진 = 임영무 기자


▶ [인터뷰 1편] 김한윤 "김남일 롤모델? 나보다 레벨 높아"


[탄천(성남) = 김용일 기자] 인생은 나이로 사는 게 아니라 열정으로 산다 했다. 김한윤(39·성남)은 스스로 동료와 팀에 방해된다면 주저 없이 축구화를 벗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후배들과 겨뤄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축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선수로서 느끼는 희열을 오래도록 맛보고 싶은 게 김한윤의 진심이다.

- 2009년 만 35세 늦깎이로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께선 불혹의 투혼을 어떻게 보나.

솔직히 아내는 선수 은퇴를 원하는 편이다. 과거 언론을 통해 많은 나이와 관련해서 안 좋은 얘기가 나오니까, 걱정을 많이 하더라. 그걸 보고 상처를 좀 받은 것 같다. (요즘엔 기뻐하지 않나) 물론 괜찮은 반응이다.(웃음) 그래도 내가 힘들어 보이는지 그만하라는 뉘앙스를 풍긴다.(웃음)

-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게 선수 연장의 영향이 있나. 예를 들어 자식에게 아버지가 축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맞다. 아들에게 아빠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더라. 지난해 부산에서 뛰었을 때 서울 원정을 갔다. 그때 처음으로 아내에게 아이와 축구장에 오라고 했다. 내가 뛰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경기에선 졌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아내와 아들은 동두천 처가에 살고있다. 김한윤은 팀에 녹아들기 위해 숙소생활을 택했다.)

- 아들은 아버지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나.

올해 4살인데 아는 것 같다. 숙소 생활을 하니까 가끔 외박을 받아서 집에 간다. 아들과 못다한 시간을 보낸다. 팀에 복귀할 때 '아빠, 축구하러 간다'라고 얘기하는데 아들이 울더라. 그럴 때 정말 힘들다. 한참 (아들이) 보고 싶을 때라 더 그런 것 같다. 늘 미안하지만, 온 힘을 다해서 자랑스러운 아빠와 남편이 되고 싶다.

4살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그라운드에서 선수로 뛰고 싶다는 김한윤.
4살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그라운드에서 선수로 뛰고 싶다는 김한윤.

- 1997년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프로로 데뷔해 올해까지 17년. 세월을 둘러보면 어떤가.

승강제가 도입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선수나 코치진이나 스트레스가 많아졌으니까.(웃음) 경기력으로 봤을 땐 요즘 후배들은 상상 이상의 기량을 지녔다. 기술이 뛰어나다. 단, 과거의 한국 축구는 정신력이 뒷받침됐다. 개인적으로 정신력이 동반돼야 좋은 기술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젊은 선수들이 부족한 것 같다. 지난해 부산에 있을 때 후배(故 정민형)가 자살했는데, 참 마음이 안 좋았다.

- 후배의 극단적인 선택이 익숙하진 않았을 텐데.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더라. 선수로서 아픔이 있었다면 선배로서 보듬어줬어야 했는데…. 다소 미안했다.

- 17년 동안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였나.

아무래도 2005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됐을 때다.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 원정을 앞둔 상황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2경기를 모두 뛰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늦은 나이에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대표팀에 들어가게 돼 기뻤다.

- 아쉽게 월드컵 최종 엔트리엔 뽑히지 못했다. A매치 역시 4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많이 아쉽다. 독일 월드컵에 못 간 게 가장 미련이 남는다. 물론 내가 잘못해서 못 간 것이다. 계속 잘했다면 월드컵 무대를 밟아봤을 텐데 마음이 좀 그렇더라. (당시 월드컵은 봤는가) 물론이다. 내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아, 내가 뛰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늦게 인정받아서 그런지 한구석에 (태극마크에 대한) 미련이 더 생긴 것 같다.

- 그렇다면 지우고 싶은 기억은.

2008년 서울에서 K리그 준우승했을 때. 당시까진 리그 우승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수원에 우승컵을 내줬는데 홈 1차전에서 1-1로 비긴 뒤 원정 2차전 1-2로 졌다. 2차전 때 수원에 첫눈에 내렸다. 더 기억에 남는다. 경기 후 후배들이 울더라. 아디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무조건 이기고 싶었던 경기였다. 그래서 2010년 우승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17년의 프로 선수를 돌아보며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한 김한윤.
17년의 프로 선수를 돌아보며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한 김한윤.

- 국내에선 프로축구, 프로야구를 놓고 비교를 많이 한다. 베테랑으로서 K리그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보나.

당연히 스타플레이어가 많아져야 한다. 1990년대 후반 안정환 고종수 이동국 신드롬으로 구름 관중이 몰린 것처럼. 지금은 그런 선수가 없는 것 같다. (최근엔 많이 좋아졌지만, 아마추어 시절부터 집단적인 문화로 선수들이 미디어에 폐쇄적인 면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나와 함께 있었던 후배 중엔 딱 한 명 있었다. (박)주영이.(웃음) 언론과 거리를 두고 살더라. 우리 사회가 워낙 나서는 것을 꺼리지 않나. 그런 면에서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본다. 프로 선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는 해야 한다.

- 지금은 카리스마로 대변된다. 과거 부천 포항 시절엔 '꽃미남' 소리도 들어보지 않았나.

그땐 (외모가) 괜찮았던 것 같다.(웃음)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도 빠지고, 참 그렇더라. 옛날 사진 보면 그래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기는 어느 정도?) 인기는 없었다. 그냥 나 혼자 느끼는 것이다.(웃음) 과거 경기 장면이 TV에서 나오면 '아, (머리가) 많이 빠졌구나'라고 얘기한다. 외모에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옷도 산지 꽤 오래된 게 많다. 아내가 피부과 가서 진료도 받으라고 권했는데, 딱히 생각이 없다.

- 은퇴 이후 지도자를 고려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겪은 지도자의 장점을 흡수할 텐데, 어느 분이 기억에 남는가.

워낙 많은 분이 계신다. 굳이 꼽자면 부천 시절 니폼니시 감독께선 현대적인 축구를 하셨다. 패스를 통한 플레이 전개. 당시만 해도 '뻥 축구'를 하는 팀이 많았는데 정말 전술 면에선 탁월하셨다. 이후 조윤환, 최윤겸 감독께서 '니포 축구'를 한국적으로 잘 변형하셨다. 서울 시절 귀네슈 감독은 정말 축구에 미친 분이었다. 한시라도 축구와 떼지 않았다. 미드필드를 통한 빠르고 기술적인 축구였다. 시대를 거스르며 다양한 전술 지략을 보인 지도자들을 기억한다. 물론 지금 안 감독께 배우는 점도 참 많다.

뛸 수 있을때까지 뛰겠다고 말한 김한윤은 선수 은퇴 이후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겠다고 한다.
"뛸 수 있을때까지 뛰겠다"고 말한 김한윤은 선수 은퇴 이후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겠다고 한다.

- 라이언 긱스 등 유럽에 비슷한 나이대 선수들을 보면 어떤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마흔 다 돼서 공 차는 것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 선수들과 다른 것 같다. 동생 와이프랑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음에도 경기 잘 뛰는 것을 보면.(웃음) 아, 솔직히 인터넷으로 긱스와 폴 스콜스의 나이를 검색해본 적 있다. 스콜스는 1974년생으로 나와 동갑이고 긱스는 한 살 많더라. 신기하면서도 한 팀의 레전드로 뛴다는 게 참 부럽고 대단했다.

- 앞에서도 말했지만, 유럽에선 노장 선수들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들에게 맞춤 전술도 펼치는 경우가 많다.

배려에 대한 문화가 다른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최)은성이 형이 대전에서 버림받은 것과 같다. 그렇게 오랜 기간 헌신하고 온 힘을 다해 뛰었는데, 레전드이지 않은가. 내보내는 게 한순간이더라. 그게 우리의 현실인 것 같다. 프로는 냉정하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축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배려도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후배들과 성남 팬들에게.

(한동안 침묵) 열심히 하란 말밖에.(웃음) 운동장에서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고, 현재보다 미래를 봤으면 한다. 나도 2군 생활도 해보고 수많은 힘든 일을 겪어봤다. 당시엔 나도 그만둘까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지금까지 축구를 하게 됐다.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생기더라. 성남 팬들에겐 올겨울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천마의 비상과 함께 K리그계 큰 형님의 비상도 기대해본다.
천마의 비상과 함께 K리그계 '큰 형님'의 비상도 기대해본다.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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