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人] '성남 큰 형님' 김한윤 "김남일 롤모델? 나보다 레벨 높아" ①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3.05.15 08:02 / 수정: 2013.05.15 08:07

K리그 클래식 최고령 필드플레이어 성남 일화 김한윤. / 사진 = 임영무 기자
K리그 클래식 최고령 필드플레이어 성남 일화 김한윤. / 사진 = 임영무 기자

[탄천(성남) = 김용일 기자]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노장의 승리욕은 유난히 아름답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은 "승리의 원칙은 과거의 영광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장의 가치는 과거의 영광 혹은 권위로 채워지는 게 아니다. '과거'란 단어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언제나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K리그 클래식의 최고령 필드플레이어인 김한윤(39·성남)은 이러한 '제로베이스'의 신념을 철저하게 지키는 '명품 노장'이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싸움닭처럼 뛰어야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김한윤은 안익수 체제의 성남에서 4명의 수비진 앞에서 공수 연결고리 구실을 한다. 겉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궂은일을 해내야 하는 외로운 포지션이다. 5라운드까지 승리가 없었던 성남이 5경기서 8실점을 했던 것과 다르게 김한윤이 선발요원으로 풀타임을 소화한 최근 6경기에선 5골만 내줬다. 물론, 한 골은 심판의 치명적인 오심이 포함됐다. '회춘 모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위치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한윤은 명가재건을 노리는 성남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안익수 감독과 함께 부산의 '질식 수비' 꼭짓점 구실을 한 그는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FA) 선수 신분이 됐다. 그러나 젊은 선수 위주로 개편을 선언한 부산은 김한윤과 계약 연장을 원하지 않았다. 올 시즌 시작 직전까지 '무직' 상태였던 김한윤이다. 선수로서 희열을 이어가고 싶었던 그는 대학팀에서 개인훈련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성남에 경험과 노련함을 채워줄 선수가 필요하다"고 말한 안 감독의 부름을 또 한 번 받았다. "아직도 후배들과 겨뤄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김한윤. 올 시즌에도 안 감독 특유의 '질식수비' 전술의 핵심 자원으로 축구 인생의 알찬 후반전을 보내고 있다. <더팩트>은 지난 9일 성남의 홈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에서 김한윤을 만나 17년 프로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나눴다.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더팩트> 취재진과 마주한 김한윤.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더팩트> 취재진과 마주한 김한윤.

◆ 안익수식 스파르타식 훈련 "힘든 건 사실, 그러나…"

-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 몸 상태는 어떠한가.

큰 문제는 없다. 최근 경기를 뛰다가 통증이 느껴졌다. (K리그 클래식 '큰 형님'으로 정말 자랑스럽다. 언제까지 뛸 것 같은가) 하하. 솔직히 요즘 많이 힘들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나이가 들면서 경기를 치른 뒤 피로가 급상승하고 회복 속도가 느려지더라. 예전엔 몰랐는데 나흘 쉬고 경기할 땐 특히 힘들다.(웃음)

- 최근 주춤하긴 하지만, 5라운드 이후 성남의 반전이 눈길을 끌었다. 그 중심엔 단연 김한윤이 있었는데.

5라운드까지 이기지 못했을 때 정말 힘들었다. 안 감독께서 불러주셔서 뒤늦게 성남에 합류했다. 도움이 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런데 성적이 안 좋으니까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전북을 이긴 뒤 '이젠 됐다. 앞으로 팀이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서울 울산을 연달아 잡고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최근 주춤해서 분위기가 안 좋은 건 사실이다.

- 안 감독은 '성남엔 감독이 2명 있다. 그라운드의 김한윤이다'라고 말했는데.

나도 기사 봤다. 감독께서 좋게 말씀해주신 거다. 경기 경험이 많다 보니 후배들이 잡아내지 못하는 부분을 해내거나, 분위기가 상대에 넘어갔을 때 스스로 제어하는 부분이 있다. (K리그 전체 후배들의 롤모델이라고 표현하던데) (고개를 저으며)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다.(웃음) 내가 지금까지 축구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장에서 후회 없이 뛰려고 애쓴 마음 뿐이다.

- 안 감독의 스파르타식 지도 방식은 축구계에서 유명하다. 노장 선수가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솔직히 힘든 건 사실이다.(웃음)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옛날 지도자처럼 이른 새벽에 나와서 운동장을 뛰게 하거나, 1분 안에 트랙 몇 바퀴를 도는 방식이 아니다. 1시간이면 1시간. 2시간이면 2시간. 주어진 훈련 시간에 집중하기를 원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정신이 놓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후배들이 그런 것을 힘들어하더라.

-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안 감독의 지도 철학은 '미래지향적'이다. 당장의 이익보다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본다. 성장하는 기반을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나도 느낀다. 부산에 있을 때 임상협 박종우 등 어린 선수들이 크게 성장하지 않았나. 반면 못 따라간 선수는 낙오다. 성남에선 김동섭 김태환 등이 안 감독의 지도를 잘 따라가고 있다. 발전이 기대된다.

- 안 감독의 강한 훈련, 신인급 선수들은 모르겠으나 년차가 쌓인 선수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반대라고 본다. 내가 나이가 어렸을 때 안 감독을 만났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한다. 감독의 뜻을 잘 알기 때문에 해내는 것 같다. 어찌됐든 안 감독께선 부산에 있을 때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하위권에 맴돌던 팀을 상위리그로 이끌지 않았나. 성남 후배들에게도 늘 말한다. '힘들어도 참고 따라가라. 1~2년 후에 분명 좋아질 것이다'라고.

안익수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이 힘든 건 사실이나 그의 진심을 믿고 축구 인생 황혼기를
보낸다는 김한윤. 취재진과 대화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안익수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이 힘든 건 사실이나 그의 '진심'을 믿고 축구 인생 황혼기를
보낸다는 김한윤. 취재진과 대화 중 환하게 웃고 있다.


◆ "김남일 롤모델이라고? 나보다 레벨 높아"

- 안 감독이 수석 코치로 있던 FC서울 시절부터 부산 성남까지. 오랜 인연이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랜 경험에서 안 감독의 스타일을 잘 알게 된 것 같다. 감독께서 선수를 이용하는 분이 아니다. 배려를 해주신다. (훈련 때 노장은 좀 봐주던가) 하하. 그런 편이다. 아무래도 후배들보다 덜 질책하시는 것 같다. 대체로 난 훈련 때 알아서 하는 편이다. 그런데 간혹 체력적으로 후배들을 못 따라갈 때가 있다. 그럴 땐 크게 나무라시진 않는다.(웃음)

- 경기장에 나갈 땐 (안 감독께서) 별도로 어떤 주문을 하는가.

특별한 건 없다. 중심을 잡아달라는 것 정도? (최근 경기를 보면 예측 능력 뿐 아니라 젊은 시절 못지않은 유연한 몸놀림이 자주 나오던데) 음, 비결은 잘 모르겠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한다. 항상 말하지만, 경기에서 후배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느낀다면 언제든 축구화를 벗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온 힘을 다하고 죽으라 뛰는 것이다.

- 가끔은 포백 수비수들이 김한윤 형님에게 의지한다는 느낌도 들더라.

(웃으며) 내가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불만은 전혀 없다. 내가 봐도 경기장에선 김한윤이란 사람이 변하는 것 같다. 밖에서는 얌전한 것 같은데 공만 차면 싸움닭이 된다. 심판에게 항의도 많이 한다.

-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경고 18장으로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최다 경고였다. '반칙왕'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음, 반칙을 그렇게 많이 안 하는 것 같은데.(웃음) 사실 경고 중 절반 이상은 심판에게 항의해서 받은 것이다. 프로로 데뷔한 부천 시절부터 심판에게 항의하는 일이 잦았다. 심판진이 알아서 잘 판정하시지만, 승리욕이 워낙 강해 약간 '욱'한다.(웃음) (아직도 억울한 게 많은가) 내 입장에선 피해 본다고 생각하니까, 아무래도 그런 게 있다. 과거 한 심판이 다소 편파판정을 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확' 항의한 적도 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웃음)

안익수 감독은 물론 후배들의 롤모델 발언에 겸손한 자세를 보인 김한윤. 인터뷰 내내
편안한 말투로 프로축구계 큰 형님다운 포스를 풍겼다.
안익수 감독은 물론 후배들의 '롤모델' 발언에 겸손한 자세를 보인 김한윤. 인터뷰 내내
편안한 말투로 프로축구계 '큰 형님'다운 포스를 풍겼다.

- 수비형 미드필더로 장수하기란 쉽지 않다. 인천의 주장 김남일은 '(김)한윤이 형이 새로운 롤모델'이라고.

에이, 그건 아닌 것 같다.(웃음) 솔직히 (김)남일이는 나보다 레벨이 높다. 내가 봐도 좋은 선수다. 난 그저 열심히 뛸 뿐이다. 501경기 출장 기록 세운 뒤 작년에 은퇴한 (김)기동이형과 항상 얘기하는 게 '우리 같은 선배들이 잘 해줘야 후배들도 나이가 들어서 계속 뛸 수 있다'고. 사실 국내에선 나이 때문에 팀에서 쫓겨나는 일이 많다. 기량이 아닌 단순 나이 때문에. 그런 일이 없게 하려면 나를 비롯해 남일이도 열심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국내 프로스포츠에선 유독 노장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

내가 봐도 많이 부족하다. 모든 것을 나이로 판단하는 것 같더라. 기량이나 활동량이 아니다. (부산이 재계약 불가 통보했을 때 섭섭하지 않았나) 이해를 하면서도 서운한 건 사실이었다. 부산에서 2년 동안 온 힘을 다했는데…. 젊은 선수들을 키우려는 목적이라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니까 서운한 것은 사실이다. <①편 끝> ▶ [인터뷰 2편] 김한윤 "긱스·스콜스 나이 검색해봤다"

국내 프로스포츠계 노장 문화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면 김한윤은 몹시 아쉬워했다.
국내 프로스포츠계 '노장 문화'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면 김한윤은 몹시 아쉬워했다.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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