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균형이 있다. 균형이 깨지면 혼돈이 오지 않나. 그런 점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안무가 안성수)
‘신선’과 ‘파격’의 연속이었다. 정구호의 세련된 무대와 연출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안성수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안무는 60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끝이 났다.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오른 ‘포이즈’는 세상의 다양한 ‘균형’을 담았다. 작품의 안무는 얼핏 불균형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찾아가는 ‘균형’의 형태를 농밀하게 무용수의 몸으로 표현했다. 안성수와 정구호의 콜라보레이션은 진정한 ‘모던’이었다.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기념작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무대였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몸으로 그려내다
국립발레단 ‘포이즈’는 ‘러시아’와 떼레야 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출발부터 ‘러시아’였다. 안무가 안성수는 지난해 서울콜렉션에서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선보인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러시아의 마지막 왕조)를 테마로 한 의상에 강한 인상을 받아 정구호에게 ‘로마노프 왕조’ 같은 느낌으로 작업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데올로기가 없는 음악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던 음악가다. 소비에트 당국의 호평을 받으며 제1회 스탈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제국주의와도 연관이 깊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으로 채워진 장과 장 사이에는 바흐의 음악이 자리를 메운다. 안무가 안성수는 ‘포이즈’의 음악에 대해 “바흐의 음악은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러시아혁명 시기의 음악과 달리 안정된 상태에서 음악의 집성을 이뤘다. 무대는 쇼스타코비치 음악으로 이뤄지며, 바흐의 음악은 작품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등장한다”고 말했다.
“안무란 음악을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말한 안성수의 작품답게 ‘포이즈’는 음악을 무용수의 몸으로 그려낸다. 쇼스타코비치가 철저한 자기비판 끝에 탄생시간 ‘교향곡 제5번’은 구소련 건국 20주년에 발표해 극찬받았던 작품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2막 1장에서 사용됐다. 히틀러를 연상하게 하는 ‘손을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뻗는’ 동작, 살짝만 몸을 뒤틀거나 비틀어 절제미를 강조한 안무로 제국주의의 위압감을 전달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는 붉은 손수건이 휘날리는 듯한 무대가 있는가 하면, 서정적이고 화려한 느낌의 무대도 있다. 이 장면은 쇼스타코비치 ‘Piano concerto 2번 중 andante’를 사용한 1막 2장이다. 장면이 시작되면 눈이 휘몰아치는 러시아를 떠올리게 하는 차갑고 무거운 음악이 내린다. 여덟 명의 남녀 무용수는 두 줄로 나란히 서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무대 중앙으로 들어선다. 곧 네 명의 무용수가 사라지면 남은 솔리스트들의 춤이 이어진다. 이 안무는 ‘무용수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두 커플의 각기 다른 ‘파드되’는 같은 듯 다르게 펼쳐진다. 돌림노래처럼 한 커플의 안무가 끝나면 또 다른 커플이 같은 동작을 맞물려 선보인다. 특히, 남성무용수가 여성무용수의 팔을 잡고 크게 회전시키는 특정 안무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형되는 양상을 보였다.
복잡하고 섬세하게 짜인 안성수의 안무는 아름답지만 전문 무용수들이 소화해 내기에도 까다롭고 어려운 동작이다. ‘포이즈’에서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은 토슈즈를 신고 취하기 어려운 기하학적인 동작과 민첩하고 예민한 발놀림을 소화해 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안성수픽업그룹 네 명의 무용수는 발레와는 다른 매력의 현대무용을 선보이며, 발레와 현대무용 사이의 균형을 잡는데 일조했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의 ‘강렬한 무대 미학’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는 연출, 무대, 의상까지 맡았다. 선과 면이 주는 위압감으로 가득한 무대 위에는 직사각형의 오브제가 자리했다. 직사각형 오브제는 공연 중 색을 달리하거나 오르내리고, 사라지며 작품의 이미지에 다양한 변화를 줬다.
작품에는 다양한 제국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정구호의 감각적인 무대 미학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러시아 군복을 변형한 의상, 절제된 군무에서 등장하는 강렬한 붉은색, 무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선과 면의 이미지들은 제국주의적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무대 바닥은 두 개의 원형 회전 테이블이 교차되며 시계 바늘처럼 착착 돌아간다. 무대 중앙 직사각형들의 오브제가 주는 선의 강압과 무대 바닥에 설치된 두 개의 회전 테이블의 움직임은 복잡하게 얽힌다. 회전 테이블은 다양한 빠르기로 회전하며 무용수들의 다면성을 보여줬다. 평소 관객이 보기 어려웠던 무용수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의상은 작품의 전체적인 타이틀에 맞도록 쇼스타코비치 시대의 의상에 맞춰 제작됐다. 빳빳하고 잘 구겨지지 않는 소재의 의상은 잘 손질된 군복을 보는 듯하다. 움직이기에 편하도록 고안된 다른 발레 의상과 전혀 다른 날 선 군복의 느낌은 또 다른 파격이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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