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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빅3' 녹화 전 인터뷰에 응한 형제 개그맨 이춘복(왼쪽)과 이강복./ 배정한 기자 |
[ 오영경 기자] 개그맨(우먼), 희극인, 코미디언. 익살스러운 몸짓이나 대사 등을 통해 대중에게 풍자나 웃음을 제공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을 일컫는 단어들이다. 국내에는 1920년대 유랑 극단의 막간극을 무대로 희극 배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후 텔레비전 방송의 발달과 함께 주간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기며 대중과 친숙해졌다.
최근엔 그야말로 '개그맨들의 전성시대'가 됐다. 개그 프로그램 KBS2 '개그콘서트'는 톱배우 장동건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까지 제치며 주말 저녁 시청률 수위를 지켜나가고 있고 개그맨들은 다양한 끼와 재능을 활용, 개가수(개그맨+가수) 열풍을 선도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수천 명이 넘는 국내 희극인들 가운데 이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일명 '무명 개그맨'으로 불리는 코미디언들은 실낱 같은 희망에 자신의 미래를 걸고 오늘도 공연장을 쓸고 닦는다. <더팩트>은 이름 없는 이들의 현실을 밀착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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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맨 이춘복이 '코빅3' 녹화 전 리허설에 임하고 있다. |
◆ 대학로 공연장, 무명 개그맨의 월급은 0원
형제 개그맨 이춘복(34)-이강복(33) 형제를 만난 곳은 tvN '코미디 빅리그 시즌3(이하 코빅3)' 녹화장 대기실에서였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을 통해 데뷔했지만 얼마 안 돼 프로그램이 폐지된 뒤 대학로 무대만 오르던 형 이춘복이 최근 절친한 개그맨들과 함께 힘을 모아 야심차게 시작한 2년만의 복귀작이다. 동생은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이강복은 '코빅1'에 출연했다 부진한 성적으로 안타깝게 하차한 경험이 있다.
"매일이 살얼음판이에요. 순위권 싸움이다 보니까 하루하루 분위기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가 있죠. 일주일동안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순위가 안 좋으면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어요. 시즌1 때 동생이 점수가 안 좋아서 하차한 게 안타까웠어요. 저라도 잘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는데..."
두 사람의 고향은 경상남도 밀양이다. 2남1녀 집안의 두 아들인 이춘복-강복 형제는 타지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동생 이강복이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며 먼저 이 길에 들어섰고, 형 이춘복은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게 합류했다.
"대학생때 공부랑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군대에서 마음을 먹었어요. 제대하고 3-4개월동안 말을 못하다가 서울 올라오기 3일 전 말씀 드리고는 모은 돈 70만원 들고 올라왔어요. 부모님께서 '할 수 있겠냐' 하시길래 '개그맨 되기 전엔 안 내려오겠다' 했죠. 2년 만에 합격하고 처음 고향에 내려갔어요. 그때 당시엔 '밀양의 서태지'였죠."(이강복)
"사실 지방에서 꿈 하나 믿고 서울에 올라오기가 힘들어요. 숙식 해결부터 어렵다보니 힘들죠. 20살에 올라오자마자 오토바이 사고가 났어요. 밀양은 시골이라 몰랐는데 서울에 오니 일방통행이란게 있더라고요. 남대문 시장에서 원단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차에 부딪쳐서 머리와 귀를 심하게 다쳤어요. 혼자 있다가 아프니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 고향에 내려갔죠."(이춘복)
이춘복은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 상경했지만 6개월 뒤 또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료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뒤 고향에서 지내다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서울에 올라와 동생을 통해 대학로 공연장에 들어갔다. 적지 않은 나이에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공연장을 쓸고 닦는 막내 생활부터 시작했다.
"2-3년 하다 보니까 제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죠. 내려가도 뭐하겠어요. 이제 와서 농사를 짓겠어요, 공장에 들어가겠어요.막내들요? 돈 안 받아요. 극장 내에서도 데뷔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어요. 20대 초반부터 20대 중반이 가장 많죠. 서른 넘은 사람은 저를 포함해 몇 없고요. 지방에서 올라온 경우가 가장 힘들죠. 이 나이에 새파랗게 어린 선배 개그맨들에게 온갖 막말과 욕설을 들어가며 지금까지 버텼는데 이제와서 어딜 가겠어요."(이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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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복(왼쪽) 강복 형제가 빈곤, 무명의 설움보다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취재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다. |
◆ "빈곤, 무명의 설움은 각오했지만…"
이춘복은 '웃찾사'가 폐지된 후 홍대에 있는 공연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 뒤 회사가 부도 나자 대학로 공연장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매일 같이 낮에는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밤에는 무대에 올랐다.
"지금 현재 통장에 잔액이 5만원 있어요. '코빅3' 첫 출연료 나오면 부모님께 속옷 사드리려 했는데 녹화 직후 목 수술을 받게 됐어요. 가시가 걸렸는데 일찍 빼지 않아 염증이 생겼는데 돈이 없어 버티다 보니 나중엔 귀까지 안들렸죠. 4시간동안 수술하고 6일 동안 입원했는데 첫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나와 오히려 부모님 손을 빌렸어요. 정말 죽고싶도록 죄송했죠."
무명 개그맨도 방송에 한 번 나가거나 행사를 다니면 출연료로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50만~6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지방 행사조차도 한 달에 한 번 기회가 올까 말까하고 그런 기회를 기다리는 개그맨들은 수도 없이 넘쳐난다는 것. 결국 꼬박꼬박 들어오는 고정수입은 생각할 수도 없고 월수입 0원인 생활이 몇 달째 이어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동생 이강복의 사연은 형과는 또 달랐다. 처음부터 지금껏 제대로 주목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이춘복과 달리 이강복은 SBS '웃찾사' 시절 '피곤한데'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대중의 인기를 경험해봤다.
"가장 답답할 때는 길 가다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왜 방송 안 나가요?' 물을 때예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난감하고 주눅이 들죠. 안나가고 싶어서 안나가는 건 아닌데...남들이라면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도 가봤어요. 근데 저보다 우리 부모님은 더 힘드셨을텐데 상처를 드릴 수는 없잖아요."
형제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부모님께 효도를 못하는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강복은 "부모님은 돈을 원하는게 아니다.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은 꼬박꼬박 용돈도 드리고 얼굴을 비칠 수 있는데 이쪽 직업은 방송을 안하면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개그맨이라는 아들들이 TV에 얼굴을 못비치는게 가장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빈곤, 무명의 설움은 이미 각오하고 올라왔어요. 저는 그래도 가끔 내려가는데 형은 너무 죄송스럽다며 몇 년째 밀양 땅도 안 밟았어요. 명절때 못 내려간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날걸요. 내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님도 이제 얼마 못사시지 않겠어요. 당당하게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정말 효도하고 싶어요."(이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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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복(맨 왼쪽)이 속한 '코빅3' 흔들바위 팀이 대기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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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연예팀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