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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최나연이 10일 저녁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승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영종도 = 임영무 기자 |
지난 9일 대한민국 골프계를 넘어 스포츠계에 새로운 역사가 기록됐다. 미 LPGA 시즌 3번째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최나연이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한국선수로 6번째 US여자오픈 우승이다. 이번 우승이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는 이유는 14년 전 박세리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했던 바로 그곳에서 세리 키즈의 대표주자 최나연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두 선후배가 그린 위에서 포옹하며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은 참으로 긴 여운과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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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리(왼쪽)가 자신의 뒤를 이어 US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린 후배 최나연과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있다. / SBS Golf 중계방송 캡처 |
최나연이 처음 골프채를 잡은 날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을 맞은 12월 23일이었다. 이후 국가대표로 선정되는 등 화려한 아마추어 성적을 남겼다. 2004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참가한 ADT캡스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을 함으로써 프로 무대에 진입했다. KLPGA투어를 뛰는 동안 매년 우승을 거두며 꾸준한 성적을 냈다. 그리고 2008년 LPGA Q스쿨을 통해 미국 진출을 하게 된다. LPGA 투어 4승에 이어 5번째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거두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이유 없는 결과가 없고, 노력 없는 성공이 없다. 최나연도 그렇다. 글쓴이는 US여자오픈이 끝나자마자 트로피와 함께 귀국한 최나연을 만나 우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학생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것을 통해 최나연의 이유 있는 성공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현재의 평온함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적인 선택!
첫 번째는 조건부 시드라는 불안한 상황에서 과감하게 미국 진출을 시도한 결정이다. 조건부 시드란 그야말로 무엇하나 보장된 것이 없다. 신인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미국 무대에서 첫 시즌이라는 점에서 조건부 시드라는 카드를 쥐고 과감히 도전하기에는 한국 무대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너무 많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과감히 미국행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잠시 갈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꿈이었습니다. 내 목표가 LPGA 진출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그 무대에 도전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최나연의 결단은 부모로부터 독립이었다. 대부분 골프선수와 마찬가지로 최나연도 아버지와 함께 대회를 다녔고, 국내무대에서 활동할 때는 아버지가 캐디를 맡았다. 그리고 미국 진출 이후에도 1년 반 정도 같이 부모와 투어를 다녔다. 그런 그가 과감히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혼자서 모든 투어를 진행하겠다는 결정을 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가족의 보호 없이 혼자 투어를 진행하는 선수들은 거의 없을 때였다.
미국 진출 이후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경기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스트레스를 부모에게 풀거나 어리광을 부리는 자신이 싫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독립을 결심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해졌다고 한다. 혼자 결정하고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결정하고 나니 성적에 연연하지도 않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먼 길을 보고 계획을 세우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절대 아끼지 않는다!
작년 개막전이 펼쳐진 태국에서 최나연을 만났다. 오랜만에 해외투어에서 만남이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레그 모리스라는 영어 선생님과 함께였다. 매일 저녁 2시간 이상씩 영어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지난 시즌 내내 모든 투어를 모리스와 함께 다녔다. 적은 비용이 아니었다. 레슨비에 항공료, 숙식비 등 어림잡아도 2억 원이 넘는 비용이다. 해외 진출 이후 많은 선수들의 영어 레슨을 받지만 투어 곳곳을 함께 다니는 선수는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녀는 간단한 답을 한다. 내 미래에 대한 투자다!
"영어를 배우니 제일 좋은 점은 거짓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영어가 어느 정도 되니 누가 말을 걸어도 자신의 마음과 상태를 말할 수 있으니 모든 것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생활이 편해지니 모든 것이 쉬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수들, 팬, 미디어와 만남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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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최나연 선수가 10일 저녁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
강한 정신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번 US여자오픈 최종라운드 중 최나연이 맞은 최대의 위기는 10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한 것이다. 2위와의 타수 차이도 순식간에 5타차에서 2타차로 줄어들었다. 타수를 잃은 것보다 심리적 압박이 더했을 것이다. 11번 홀로 이동하는 동안 그녀가 한 생각이 인상적이다.
"치밀어 오르던 화를 마시던 물병에 담아 숲속으로 던져버렸다"
곧 바로 12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바운스백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스코어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더군다나 그동안 최나연은 뒷심이 부족하다고 평가 받아왔다. 무엇이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화를 참아야겠다'라는 생각만으로 변화와 안정을 가져왔을까?
최나연은 2009년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두 명의 멘탈 코치를 만났다. 그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함께해 오고 있다. 심리 전담 린 메리어트와 골프 심리 담당 피아 닐슨이다. 특히 닐슨은 LPGA에서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아니카 소렌스탐의 스승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직접 본인이 선수로서 경험해 보았기에 플레이 상활에서의 다양한 심리적 상황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멘탈 코칭은 단순히 선수와의 상담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최나연은 말한다. 오히려 효율적인 연습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연습시 오직 공 하나를 사용하도록 한다. 여러 개의 공을 사용할 때보다 연습에서 집중도가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이외에도 정확한 목표를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 밖으로 큰소리를 내어 말한 후 스윙을 한다. 반복적으로 1,000개의 공을 치는 것보다 코스 이미지를 그려서 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러한 프로그램 54가지를 가지고 4년째 훈련하고 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조금씩 강해지는 자신을 스스로 느낀다. 그리고 더욱 강해져 간다.
이번 귀국 인터뷰에서 최나연은 올림픽 대표로 꼭 뛰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명예의 전당에 든다거나 세계랭킹 1위가 되겠다는 목표에 앞서서 말이다. 그 이유를 최나연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
프로 입문 이후 매년 평균 8천만 원을 자선단체 등에 기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플랜 코리아와의 인연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모든 활동도 그녀가 꿈꾸는 목표와 통한다. 화려한 선수가 아닌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람! 그 목표를 위해 지금 보다 내일에 투자하는 것!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길을 가는 것!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는 것! 이것이 최나연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