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없는 운동장...조용하지만 '병든 교육' [박순규의 창]
  • 박순규 기자
  • 입력: 2026.04.22 00:00 / 수정: 2026.04.22 00:00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2개 초등학교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못 하게 하고 있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AIA생명 어린이 건강축구 프로그램 장면./AIA생명.뉴시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가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2개 초등학교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못 하게 하고 있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AIA생명 어린이 건강축구 프로그램 장면./AIA생명.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드러난 ‘초등학교 축구 금지’ 실태는 교육계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2개 초등학교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못 하게 하고 있다. 특히 부산은 전체 초등학교의 3분의 1에 달하는 105개교가 축구를 금지하고 있다는 통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야 할 운동장이 ‘금지 구역’으로 변해버린 이 서글픈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 ‘민원’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포위된 교육 현장

학교가 축구공을 뺏은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민원’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다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고학년이 운동장을 독점해 우리 애가 소외감을 느낀다"는 불만이 학교 문을 걸어 잠그게 했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격이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말처럼, 작은 부상이나 갈등을 막겠다고 아이들의 신체적·정신적 성장의 기회 자체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곳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고 그 속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배우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축구를 하며 충돌하고, 넘어지고, 때로는 패배한다. 이 과정에서 협동과 경쟁, 배려와 인내를 배운다. 이를 제거한 운동장은 그저 ‘조용한 공터’일 뿐이다. 교육학자 존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했다. 축구는 교과서 밖의 삶이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갈등을 조정하며, 실력을 인정하고 좌절을 견디는 법을 익힌다. 이를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도려낸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겠는가. 상처는 없지만 경험도 없는, 안전하지만 무력한 성장뿐이다.

◆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의 운동장에서 결정됐다

영국 장군 웰링턴 공작은 "워털루 전투의 승리는 이튼 학교의 운동장에서 결정됐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장에서의 용기, 협동심, 전략적 사고가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부딪히며 공을 차던 경험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교육의 대부 장 자크 루소 역시 저서 '에밀'에서 "아이를 튼튼하게 하려면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라. 아이를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그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체력이 곧 국력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빌리지 않더라도, 성장기 아이들에게 신체 활동은 뇌 발달과 사회성 함양의 필수 조건이다. 축구 경기 중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화해하는 과정이야말로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교육’이다.

◆ 숫자가 증명하는 위기의 아이들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신체 활동 부족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권장 신체 활동 미준수율은 90%를 상회하며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신체 활동 부족 비율은 40%를 넘고, 비만율 역시 꾸준히 상승해 일부 학년에서는 20%를 웃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장 축구까지 막는다면, 정책 방향과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셈이다. 교육 당국이 교육과정까지 개편하며 신체 활동을 늘리려는 마당에, 학교 현장은 정반대로 역행하고 있다. 212개라는 숫자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민원이 두려워 알아서 몸을 사리는 학교가 전국에 얼마나 더 많겠는가. 부산의 사례는 교육 현장이 교육적 소신이 아닌 ‘행정 편의주의’와 ‘책임 회피’에 매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 학교는 '온실'이 아니라 '연마장'이 되어야 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단 하나의 학교에서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엄정 조치를 약속했다. 이 약속이 결코 '공언(空言)'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학교가 민원으로부터 자유롭게 교육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교사가 안전사고 책임에 대한 공포 없이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이끌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급선무다.

아이들의 발길을 묶는 교육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요, "백견이 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 했다. 백 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 번 직접 뛰며 땀 흘리는 것이 아이들의 영혼을 살찌운다.

학교는 아이들을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곳이 아니다.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씁쓸함을 함께 나누는 '삶의 연마장'이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돌려주라. 운동장에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 학교는 이미 죽은 교육이나 다름없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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