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부터 무기징역까지…443일 싸워온 '거리의 시민들'
  • 정인지 기자
  • 입력: 2026.02.20 16:13 / 수정: 2026.02.20 16:13
시민 박민주(28)·대학원생 김희진(27) 씨
"무기징역 납득 어려워…'촉법노인' 비판도"
"광장의 힘 믿어…필요하면 다시 거리로"
박민주(28) 씨는 12·3 당일을 현실감이 없던 밤으로 기억했다. 박 씨는 계엄 소식을 듣고 이게 꿈이 아닌가 의심했다며 지난 1970~1980년 군부 독재 시절도 아니고 2024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비상행동
박민주(28) 씨는 12·3 당일을 '현실감이 없던 밤'으로 기억했다. 박 씨는 "계엄 소식을 듣고 이게 꿈이 아닌가 의심했다"며 "지난 1970~1980년 군부 독재 시절도 아니고 2024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비상행동

[더팩트ㅣ정인지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443일 만이다. 계엄 당일 국회를 지킨 시민들은 계엄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이후 탄핵과 무기징역 선고까지 443일을 거리에서 보냈다. 1심 재판부는 내란에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수많은 군과 경찰이 무슨 죄가 있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한 시민들은 "계엄에 따른 시민의 피해는 판결문에 담기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 67차례 집회 참석강의도 빠지고 거리로

시민 박민주(28) 씨도 지난 2024년 12월3일 국회로 향했다. 17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비상행동)과 함께 국회 앞을 지키며 밤을 꼬박 샜다. 박 씨는 "계엄 소식을 듣고 이게 꿈이 아닌가 의심했다"며 "1970~1980년 군부 독재 시절도 아니고 2024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박 씨는 다음날 열린 촛불집회부터 지난해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까지 거의 모든 집회에 참석했다. 67차례에 걸친 집회에서 사회와 행진팀장을 맡은 그는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 마디 사이에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을,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후렴구에 '아모르파티' 대신 '윤석열 퇴진' 을 넣는 등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집회' 문화를 선도했다.

박 씨는 2024년 12월7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불성립됐던 날이 가장 인상깊다고 했다. 그는 "좌절감이 컸지만, 시민들의 힘이 다음주인 12월14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4일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을 때 안국역 일대에서 노숙하던 시민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고 떠올렸다.

박 씨는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집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 마디 사이에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을,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후렴구에 아모르파티 대신 윤석열 퇴진 을 넣는 등 집회 문화 선도한 인물이다. /비상행동
박 씨는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집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 마디 사이에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을,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후렴구에 '아모르파티' 대신 '윤석열 퇴진' 을 넣는 등 집회 문화 선도한 인물이다. /비상행동

대학원생 김희진(27) 씨 역시 마찬가지다. 김 씨는 계엄 해제 3일 만인 2024년 12월7일 국회 앞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연달아 대규모 집회에 참석했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묻자 지난해 3월27일 광화문에서 열린 전국 시민총파업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평소처럼 강의가 있던 날이었는데, 교수님이 '수강생들의 사회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출석 확인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며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인지 알게 됐고, 덕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에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후 매일 아침 뉴스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계엄 당일 속보의 충격이 잊히지 않아 눈을 뜨자마자 정치면을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다"면서 "주로 한숨 쉴만한 소식이 많았다"고 웃었다. 이어 "계엄 당시 두려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평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도심을 가로지르며 다른 목소리로 같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던 일이 마음을 더 두텁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박 씨도 "무대 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란수괴를 단죄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고자 하는 절박한 열망들을 느꼈다"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회의 악들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절감하게 됐다"며 "단결된 민중과 연대의 힘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비상계엄 해제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김희진(27) 씨(왼쪽)와 김동윤(26) 씨가 남긴 사진. /김희진 씨 제공
비상계엄 해제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김희진(27) 씨(왼쪽)와 김동윤(26) 씨가 남긴 사진. /김희진 씨 제공

◆ 무기징역에 아쉬움…"민심과 거리 먼 판결"

이들은 입을 모아 1심 무기징역 선고에 아쉬움을 표했다. 박 씨는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부정 진술을 지나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실패한 내란이라는 점, 고령과 초범이라는 사정을 들어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목숨을 걸고 광장에 나섰던 국민들을 기만하고 헌재의 판단을 무시한 결정"이라며 "아직도 내란 종식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사법부가 실망스럽다. 결과적으로는 윤 전 대통령이 재판 초기부터 주장했던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냐'는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꼴"이라고 비판했다.

김 씨도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느껴져 실망스러웠다"며 "눈치 보며 내린 판결이 시민과 '윤 어게인' 양측 모두에게 비난받게 됐다는 점이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어 "내란이 성공했다면 지금의 재판도 불가능했을텐데, 감형의 요소들을 납득할 수 없어 분노가 치민다. '촉법노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며 "내란 우두머리에게 가석방의 여지가 있는 무기징역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들은 443일 간의 경험을 토대로 좌절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 씨는 "광장에 나섰던 민중과 함께 계엄 해제도, 탄핵도 이루지 않았나"며 "그 기억을 바탕으로 포기하지 않고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박 씨도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다가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오면 다시 거리로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전날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30년 전인 지난 1996년 8월26일 1심 법원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두환 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후 전 씨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inj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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