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여권 간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대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어주면서 세운4구역 재개발에 탄력이 붙은 가운데, 여권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정조준하며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오 시장은 12일 "이른바 '오세훈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며 "여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와 장관까지 나서서 서울시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전형적인 지방자치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치적 계산으로 지방자치단체를 흔들면 국민 심판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여권에서는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두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민석 총리는 지난 10일 종묘 현장을 직접 찾아 재개발 제동 의지를 내비쳤다. 김 총리는 "자칫 문화와 경제, 미래 모두를 망칠 수 있는 결정"이라며 "만약 서울시에서 얘기하는 대로 종묘 바로 코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에서 보는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전현희 의원(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종묘 앞에 초고층 빌딩을 세우겠다고 한다"며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종묘가 오 시장의 무원칙 난개발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해제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박주민 의원 역시 "오 시장이 하는 건 개발이 아니라 훼손"이라며 "서울시의회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은 개발 허가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서영교·박홍근·김영배 의원 등도 참석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 역시 지난 7일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 문체부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서울시와 문체부의 갈등은 2023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의회는 문화재 보존지역 외부 건설공사를 제한하던 서울시 문화재보호조례 제19조 제5항을 '과도한 규제'라며 삭제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문체부는 "문화재청과 협의 없이 조례를 바꾼 건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지난 6일 "보존지역 밖까지 협의할 의무는 없다"며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로 세운4구역 재개발에도 탄력이 붙었다. 해당 지역은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법적 보존구역(100m) 밖에 위치한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종로변 101m, 청계천변 145m까지 건축 높이를 완화하는 재정비촉진계획을 고시했다. 141.9m는 여의도·용산 일대 고층 주상복합과 비슷한 높이로, 최대 40층 규모 건축이 가능하다.
20년 간 지체된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갈등 역시 첨예하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토지주들과 역사·문화유산 보존을 요구하는 학계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세운4구역 토지주들은 "우리 땅을 정치 쟁점화하지 말라"며 "재개발을 가로막는다면 손해배상과 직권남용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2006년 서울시를 믿고 사업을 시작했고, 2009년 세입자를 모두 이주시킨 뒤 월세 수입도 끊긴 상태"라며 "매달 금융비용만 20억 원 이상, 누적 600억 원이 넘었다"고 호소했다.
반면 27개 역사학·고고학·민속학 관련 학회와 6개 문화유산 관련 협회는 성명을 통해 "고층 건물의 배치는 종묘의 가치와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우리의 삶에서 역사적 전통과 기억을 제거하고 문화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무분별한 개발 행위에 적극 반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