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서울 종로의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간 갈등이 표면화됐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5m로 상향 조정하는 정비계획 변경을 지난 10월 30일 고시했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의 경관과 역사적 맥락을 훼손할 수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세운4구역은 종묘 남쪽 인근, 세운상가 일대에 위치하며, 1979년 도시 재개발 구역으로 처음 지정됐다. 이후 200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다시 지정됐지만, 그간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재 심의 높이 기준을 적용해 당초 계획(120m)보다 낮춰 72m로 제한하면서 사업성이 사라졌다"며 "결국 20년 동안 개발이 멈췄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번 계획 변경을 통해 장기간 정체된 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세운4구역은 낙후된 산업 공간을 현대화하고, 주거·업무 복합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서울시 핵심 도시정비사업 구역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3일 입장문을 통해 "서울시가 유네스코 권고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세운4구역 정비계획을 변경·고시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009년부터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세운4구역 건축물의 높이 기준을 조정해왔으며, 그 결과 종묘의 경관 보존을 위해 최고 높이 71.9m 기준이 설정됐다. 그러나 서울시가 이를 일방적으로 145m까지 상향함에 따라, 종묘의 경관과 공간 질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종묘는 1995년 우리나라가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등재된 세계유산으로, 조선 왕실의 제례가 이어져 온 공간이자 고요한 공간 질서를 지닌 역사적 유산이다. 유네스코는 등재 당시 '세계유산구역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가유산청은 "세운지구 개발과 관련해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영향평가(HEIA) 실시를 권고한 바 있음에도, 서울시가 이번 변경 절차에서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시에 기존 협의안(71.9m 이하)을 유지하고, 유네스코 권고사항에 따라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먼저 실시할 것을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가유산청이 유감을 표명했지만, 세운4구역은 법적 문화재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력을 갖는 지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절차상 문제는 없으며, 계획 자체를 바꿀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유관 부서 협의를 거쳤지만, 문화재청이 심의를 요구하면서 20년간 사업이 지체됐다"며 "이번 계획은 주민 제안으로 추진되는 것이며, 법에 없는 사항을 행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시는 이번 계획에서 건물 높이를 145m로 설정한 것도 하자가 없다고 강조한다.
시에 따르면 문화유산법상 문화재로부터 100m까지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완충구역으로 보호된다. 세운4구역은 그 밖에 위치한다. 안각(27도선) 기준을 적용하면 가장 먼 지점은 149m가 되므로, 이를 참고해 145m로 가이드라인을 잡았다는 것이 서울시 측 설명이다. 또한 "문화재 관련 현상변경 기준이 2010년 마련됐지만 2017년 폐지됐다. 현행 법규상 이번 계획 변경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다만 국가유산청과의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유감 표명에 대해 경청은 하겠지만, 계획 자체를 되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화는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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