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칼럼⑯] 법률 AI 혁신의 시대, 유연성과 개방성의 저울로 공정의 중심을 세우자
  • 장준영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 입력: 2025.11.04 00:00 / 수정: 2025.11.04 08:16
법률 AI 분야에서 데이터의 정확성이 특별히 더 요구되는 이유는 그 결과물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인데, 현재 법률 AI를 고도화시키는 부분에 가장 큰 장애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 즉 공개된 판결문 데이터가 부족한 것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개인정보보호법학회
법률 AI 분야에서 데이터의 정확성이 특별히 더 요구되는 이유는 그 결과물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인데, 현재 법률 AI를 고도화시키는 부분에 가장 큰 장애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 즉 공개된 판결문 데이터가 부족한 것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개인정보보호법학회

AI(인공지능)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인터넷 종합 미디어 <더팩트>와 <개인정보보호법학회>가 손잡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데이터법제의 발전'을 주제로 한 기획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AI 혁신을 위한 필수 과제인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 간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법제도 정비의 중요성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법 재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낼 예정입니다.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며, 보호돼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학문적 분석과 사회적 담론을 제공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장준영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개인정보보호법학회 부회장)] AI 대전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기존 법률 체계를 새로운 기술환경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내린 개인정보 보호법상 가명정보 처리와 관련한 판결은 AI 시대에 맞는 유연한 법 해석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지난 7월 18일 대법원은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처리자를 상대로 과학적 연구, 통계, 공익적 기록보존 목적을 위한 개인정보의 가명처리를 정지할 것을 구하는 사건(대법원 2025. 7. 18. 선고 2024다210554 판결)에서, 개인정보에 대한 식별 위험성을 낮추는 가명처리는 정보주체에 대한 권리 또는 사생활 침해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개인정보 처리와는 구별된다고 전제하면서, 데이터 관련 신산업 육성이 범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AI와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데이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가명정보 조항의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가명처리는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처리정지 요구 대상으로 정한 개인정보 처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상반된 결론을 내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 하였다.

이는 대법원이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데이터 활용을 통한 신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고려한 균형 잡힌 해석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서, AI 대전환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 보완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AI 3대 강국 도약이라는 범국가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양질의 학습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법원의 법률 해석에 반영되는 것과 별개로 법원은 스스로 AI 전환을 위한 여러 노력 역시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총 145억원의 예산 투입을 통해 재판지원 AI를 도입하여 AI 로클럭 수준의 생성형 AI 시스템을 구축예정이라고 밝혔고, 법원 인공지능연구회에서는 사법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에 관하여 인공지능 도입과 활용 등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AI는 사법부 내부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의 여러 노력 이외에 그 밖의 법률 전문가, 나아가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정확한 법률 AI를 쉽게 접근·활용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법률 AI가 완성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4년부터 대국민 AI 법률 보조 서비스 확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역시 ‘모두의 AI’ 위한 하나의 노력일 것이다.

법률 AI 분야에서 데이터의 정확성이 특별히 더 요구되는 이유는 그 결과물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인데, 현재 법률 AI를 고도화시키는 부분에 가장 큰 장애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 즉 공개된 판결문 데이터가 부족한 것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판결문은 법원의 판단이자 가장 권위 있는 해석 기준으로서, 판결문이 충분히 개방되지 않을 경우 법률 AI의 판단 근거는 빈약해지는 결과 오류가 증가할 수 밖에 없고, 최근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변호사가 생성형 AI를 활용하다가 가짜 판례를 법원에 제출한 사례가 발생하는 것 역시 정확한 판결문 정보가 법률 AI의 안정적 정착에 필수적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판결 공개 비율은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많이 뒤처지고 있어 그 확대를 위한 노력도 절실하지만, 판결문에 기재된 수많은 개인정보의 비식별화의 정도와 기술적 수준을 안전하면서도 AI 학습에 친화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도 남아 있다.

즉, 법률 AI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판결문 데이터 개방과 개인정보 보호의 균형추 마련이 필수적이다. 이미 민형사 판결문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기도 하고, 최근 법원행정처에서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에 대하여 국민에 의한 사법 통제, 알권리의 충실한 보장을 위해 전향적 공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판결문 상의 개인정보를 AI 학습에 친화적이면서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차세대 가명처리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민사판결서 열람 및 복사에 관한 규칙에 따라 판결서 상의 개인정보에 대해 비실명 처리를 하도록 되어 있지만, 개인정보로 평가되는 단어, 문장의 단순한 익명화 방식은 AI 학습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역추적 가능성에 노출되기 쉽다. 따라서 개인 식별정보는 안전히 제거하면서도 법률 판단에 필요한 정보는 보존될 수 있는 가명처리 기술 개발이 요구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미 생성형 AI의 안전한 개발·활용을 위한 여러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만큼, 법원 판결문의 특성을 고려하여 AI 학습에 보다 친화적이면서도 안전하게 비식별 조치를 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을 법원과 함께 만들어야만 고도화된 법률 AI의 확산이 가능할 것이다.

AI 대전환 시대, 법원은 단순한 법 해석 기관을 넘어 데이터 관리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판결문 데이터의 안전한 개방은 법률 AI 발전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권리 보호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장준영 변호사(법무법인(유) 세종, 개인정보보호법학회 부회장)
장준영 변호사(법무법인(유) 세종, 개인정보보호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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