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준영 기자] 고교학점제가 학생, 교사 모두에 부담을 초래하고 수업 질을 떨어트리고 있다며 정부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교과목은 많아졌지만 교사 수는 늘리지 않아 수업 질이 하락했다는 의견이다. 또한 학생들이 적성보다 대입 점수를 고려해 과목선택을 하고,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을 하지 못하는 일률적 학업성취 기준으로 학생과 교사 부담이 크다는 현장 목소리다.
3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노동조합연맹은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과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교학점제 문제점을 밝히고 전면 개선과 재검토를 교육부에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강 의원 외에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도 함께 주최했다.
올해 고교 1학년 학생들부터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의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다. 3년간 192학점 이상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수업 횟수의 3분의 2 이상 출석과 학업성취율 40% 이상 돼야 과목 이수를 인정 받는다. 1학년은 공통과목 중심으로 운영하고 2학년부터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는다.
교원단체와 여야 의원들은 교사 한 명이 서너명 몫을 감당하는 비교과 수업과 다과목 지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교원 수급 계획을 재검토하고 교원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교학점제로 다양한 선택 과목이 개설되지만 교육부가 교원 증원 없이 강행해 교육 현장에선 교사 부담과 수업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3개 교원단체가 지난달 15일부터 22일까지 전국 고등학교 교사 4162명 대상으로 고교학점제 실태 설문조사를 공동 실시한 결과, 응답 교사 78.5%가 2개 이상 과목을 담당하고 있으며, 3과목 이상을 가르치는 교사도 3명 중 1명에 달했다. 교사들 86.4%는 이 같은 다교과 문제로 '깊이 있는 수업준비가 어려워 수업 질이 저하된다'고 응답했다. 교원단체들은 "이러한 다과목 수업은 필연적으로 수업 질 저하로 이어진다"며 "전공과 무관한 과목을 떠맡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학생들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교사 평가를 믿고 수긍할지도 의문이라며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 취지도 무색해졌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교사가 부족하니 학교는 학생 수요가 아닌, 교사 수급 상황에 맞춰 과목을 개설할 수밖에 없다"며 "설문에서도 46.3%의 교사들이 ‘학교 여건 내 수용 가능한 과목 위주 편성으로 학생 선택권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지적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학생 수가 아닌 개설 과목 수, 학급수, 학급당 학생 수 상한제 기준으로 교원 정원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교사를 증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대입을 위한 등급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과목 선택 시 적성보다 점수를 우선시 여기게 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상민 이현고 교사는 "고교학점제로 이른 시점에 진로와 학과를 결정해 그에 따른 과목을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며 "진학과 진로 방향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과목을 선택할 때 학생들은 평가 결과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상위권 학생이 많이 선택한 과목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까 우려해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학교 상황을 이야기했다.
여야 의원들과 교사들은 고교학점제의 미이수제도와 최소성취수준 보장 제도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출석 일수 등만 충족하면 졸업이 가능했지만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과목별 학점인정 이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졸업이 유예되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 학점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출석률뿐만 아니라 학업 성취율 40%를 넘어야한다. 교육부는 학점 이수 조건 미달 학생에 대해 방과 후나 방학기간에 보충지도를 통해 최소 성취 수준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다. 고교학점제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78.0%가 미이수제 폐지를 요구했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를 실시한 교사 중 97%가 학생 성장에 긍정적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미이수 학생을 지도해 본 교사의 73.9%는 '수행평가 비중을 높이거나 점수를 과도하게 부여했다'고 했고, 57%는 '지필평가에서 난이도 낮은 문제를 다수 출제했다'고 답했다.
교원단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동안 곱셈, 나눗셈이나 알파벳 읽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학습결손이 이어진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고교학점제를 한다면서 고등학교 수준의 최소성취수준 달성을 갑작스럽게 요구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미이수제도 때문에 대책 없이 졸업조차 하지 못하는 학생만 양산할 것이 아니라 출석일수를 현실적인 졸업 기준으로 삼되 기초학력 부진 학생이나 위기학생에 대한 국가 책임지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교육당국이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 교원단체들은 비효율적인 출결 시스템 전면 개선도 요구했다. 고교학점제와 함께 교과별 출결 확인 방식이 도입되면서 담임교사가 수많은 교과 교사에게 연락해 출결 상황을 확인하고 수정을 요청해야 하는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의견이다.
강경숙 의원도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교육부는 즉각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학점제 관련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현장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며 "교원 확충은 행정안전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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