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과용 도서(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교육부는 신속한 후속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AI 교과서가 초·중·고 교실에 도입된 지 한 학기 만에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
교육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개정 법률안에 따라 기존 개발된 AI 교과서를 포함한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는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분류됐다"며 "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고 밝혔다.
그동안 교과용 도서의 정의와 범위는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제시됐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법률로 직접 규정됐다. 기존에 개발된 AI 교과서를 포함한 '지능정보 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는 앞으로 교육자료로 분류된다.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선정하려면 학교장은 개인정보 보호위원회와 협의해 정하는 기준을 따라야 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조항도 담겼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올해 1학기부터 일부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도입됐다. 당초 전면 도입을 추진했지만 학부모와 교원 등의 반대로 원하는 학교만 자율적으로 채택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전국 학교의 AI 교과서 채택률은 34% 수준이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AI 교과서를 도입했던 학교들은 2학기 교과서 재선정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도입을 앞두고 진행 중이던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2학년 수학·영어 AI 교과서 검정심사는 중단된다. 교과서는 모든 학교에서 반드시 채택해야 하고 무상교육 대상이지만 교육자료는 예산 지원 근거가 없어 채택률이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AI 교과서 개발사들의 '소송 확전'이 예고되는 이유다.
교육부는 현장 혼란 최소화를 위한 후속 조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차영아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2학기 학사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FAQ(자주하는 질문)를 만들어 시도교육청에 신속히 안내하고, 통과하는 법률이 부합하지 않는 관계 법령 및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개정도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원단체들은 채택률이 높은 일부 지역에서는 혼란이 불가피하지만 전국적으로는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종이책 전환에 따른 추가 예산 확보, 교육자료 전환 후 채택 여부, 현장 반발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채택률이 높은 지역은 좀 더 혼란이 크겠지만 전국적으로 봤을 때 30%대라 교육 현장에서의 혼란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예산 운용 면에서 2학기 때 종이책 구입에 따른 추가 예산 확보나 내년부터 교육자료로 쓸 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등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장승혁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대변인은 "교총 설문조사에 따르면 AI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의 경우 효과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AI 교과서를 쓰다가 종이책으로 회귀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 대변인은 "애초에 교원들이 AI 교과서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AI 교과서가 어떤 형태로 구현이 될지, 학교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자료도 내용도 없었던 상태에서 연수를 받고 당장 시행해야 했기 때문"이라며 "교과서는 서책형으로 쓰더라도 AI 교과서 활용을 지원하는 시스템 마련 요구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