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정인지 기자] 서울동부지검과 서울동부지법이 나란히 늘어선 서울 송파구 법원로5길 4차선 도로 위에 '작업 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안내판이 세워졌다. 안내판 뒤로 '가로수 유지관리'라고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9명이 나타났다. 저마다 손에는 삽과 갈퀴, 절지가위, 빗자루, 포대자루 등을 든 채였다.
트럭에서 내린 이들은 곧바로 몸을 웅크리고 가로수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송파구청 공원녹지과 소속 근로자들로, 9명이 한 조를 이뤄 일대 도로와 공원 조경 작업에 나선 것이다.
작업반장 김모(70) 씨는 뜨거운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 종아리와 팔에 토시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른 근로자들도 헬멧 아래 스카프를 두르고, 얼굴 마스크와 토시, 무릎 보호대 등으로 무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드러난 신체부위는 뒷목과 귀, 눈뿐이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뒷목과 토시 사이 드러난 손목, 팔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낮 최고기온 35도를 넘긴 폭염에 온몸은 땀범벅이 됐다. 달궈진 아스팔트에는 아지랑이가 일고 지열이 올라왔다. 온도계로 지면에서 5㎝ 정도 높이 온도를 재보니 52.5도였다.
그럼에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도로가에 자란 화양목과 화살나무의 높이를 평평하게 깎았다. 좌우 역시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과 평행하도록 다듬었다. 나무 가까이서 인도를 걸어보던 이들은 통행할 때 걸리는 가지들도 짧게 정리했다. 보도블럭 사이로 고개를 내민 잡초는 예초기로 제거했다.

50분 정도 지나자 김 씨는 "잠깐 쉬다 합시다"라고 외쳤다. 이들의 임시 휴게공간은 소리공원 입구 소나무 아래였다. 이들은 외마디 소리를 내며 일제히 헬멧을 벗어던지고 바닥에 걸터앉았다. 이어 스카프로 눈과 이마, 얼굴 순으로 땀을 닦아냈다. 무심코 장갑으로 눈 부위를 쓸던 한 근로자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들의 작업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다. 김 씨는 "'50분 일하고 10분 휴식'이 지침"이라며 "정해진 작업 경로와 순서가 있는데, 가로수 관련 민원이 들어오면 마치 119대원들처럼 하던 일도 제쳐두고 그곳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내려놓은 헬멧 내부 이마 부위에 덧댄 천 조각은 흠뻑 젖어있었다. 헬멧 겉면에는 소속과 성명, 혈액형을 적는 칸이 있었다. 김 씨는 "차도에서 작업하다 안내판을 못 보고 달려오는 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된 동료가 생긴 이후 헬멧 착용이 권고됐다"며 "쓰러질 때 급하게 수혈하기 위해 헬멧에 혈액형을 적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위 방지책은 있냐'는 질문에 "구청에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다. 예산이 없다고 한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는 "폭염엔 알아서 개인 사비로 땀 수건을 두르고 얼음물을 갖고 와서 먹는 정도"라며 "장마 때는 지붕에 빗물이 떨어진다. 방수 좀 해달라고 해도 돈이 없단다"고 했다.
이어 "요새는 가장 더운 시간이 따로 없다. 하루 종일 불볕에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가 얼마나 뜨거운 지 모른다"며 "야외에서 일하는 우리는 쉴 곳이 마땅히 없다. 그날 그날 작업하는 곳 근처에 그나마 그늘 바닥이 있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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