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교육제도는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경쟁이 심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2013년 '교육 강박증에 걸린 한국인'이란 기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다 높은 사교육비, 밤 11시까지 하루 15시간 수업받는 학생들을 소개하며 한국 학생들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이라 평가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경쟁 교육으로 인한 사교육 시장은 부모들 불안감을 자극하며 영유아들에게까지 파고들었다. 4세, 5세가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보고 난이도는 지적 학대에 이를만큼 높다. 초등학생부터 의과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학원들도 있다. <더팩트>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을 맞아 새 정부가 주목해야 할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교육제도와 사교육 문제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아무래도 사교육 없이는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 때와는 달리 대학입학 전형이 아주 다양하고 복집해졌잖아요.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개개인별로 세심하게 신경써주진 못할 것 같아서요."
초등학교 1학년 아들 학부모인 30대 여성 A씨는 '공교육 만으로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2005년 그가 고3이었던 때는 입학사정관제 도입 전으로 대입제도가 비교적 단순했다. 수능 성적과 내신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했고 학교생활기록부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집 근처 종합반 학원을 다니며 가고 싶은 학과 위주로 원서를 썼고 서울대에 합격했다. A씨는 "명문대 진학이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거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가능하면 아들도 좋은 대학을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령인구는 줄고 있지만 사교육비는 줄지 않는다. 초·중·고 사교육비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데다 '4세 고시', '7세 고시' 등 영·유아 사교육까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사교육 수요가 줄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교육 만으론 불안하기 때문이다.
◆ 학부모 5명 중 1명만 '공교육 잘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초중고 학부모 7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여론조사 결과 '공교육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도 18.5%로, 공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학부모는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전혀 못하고 있다'는 7.5%,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2.1%로 부정 평가가 29.6%로 집계됐다. 공교육이 '잘한다'는 응답보다 '못한다'는 응답이 9%포인트(p) 이상 높은 것이다. 나머지는 보통(49.9%)이라고 답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 '사교육 과열 현상, 해법은 없는가?'는 사교육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원인으로 '공교육의 역할과 수요자(학생·학부모)의 요구 차이'를 꼽았다. "공교육의 본질과 역할은 지·덕·체의 전인적 성장에 두는데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높은 성적을 통한 대입 성공과 사회적 지위 획득'에 있다"는 진단이다. 보고서는 "대학 입시는 개인의 적성과 경쟁력을 중시하지만 공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둔다"며 "학생과 학부모는 교과 보충, 선행학습 등 최적의 학생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개별 학생 맞춤형 교육이 어렵다는 점, 초등학교 저학년 또는 유아의 경우 맞벌이 부부가 메우기 어려운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는 점 등도 학부모가 사교육을 찾는 배경이다. 교육부는 2023년 6월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많은 행정업무로 교원이 수업·생활지도 등 본질적인 교육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으며, 교권 침해 등으로 학교 현장 교원들의 교직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8년 기준 교사의 주당 행정업무 시간은 일본 5.6시간, 한국 5.4시간, 영국 3.8시간, 프랑스 1.4시간, 핀란드 1.1시간 등이다.
◆ 공교육 강화로 역부족…입시·학벌주의 타파가 우선
이재명 대통령 교육 공약은 공교육 질을 높이고 지원 범위를 넓혀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데 집중돼있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대선 공약집에 공교육 강화 방안으로 △국가책임 공교육 △온동네 초등돌봄 도입 △방과후 학교 지원 확대 △교육방송을 활용한 자기주도학습센터 운영 등을 언급했다. 교권 보호 방안으로는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줄이고, 민원 처리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는 구상 등도 내놨다.

그 외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서는 '입시부담을 줄이는 방향의 대입 제도 개선'도 꾸준히 거론돼왔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Baccalaureate), 독일의 아비투어(Abitur) 같은 대입 시험의 자격고사화다. 자격고사는 보통 절대평가로 치러지고 일정 성적 이상을 받으면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주는 식의 시험을 말한다. 김영철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4월 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이 연 제9차 인구전략 공동포럼에서 '수능의 자격고사화' 검토를 수험생의 경쟁 강도·입시부담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 방안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내신과 수능 모두 변별력이 강한 형태로 유지되고, 이를 동시에 입시전형에 활용하는 국가는 OECD 내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촘촘히 학생을 선별하는 각종 대입 기제를 혁파해 수험생들 경쟁을 줄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제도 개선만으로는 사교육 과열 현상을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도 지적이 나온다. 결국 명문대 진학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비율은 54.7%다. 대기업 근로자가 100만원을 벌 때 중소기업 근로자는 54만원을 번다는 의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4월 내놓은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종사자 250명 이상 기업 일자리 비중은 13.9%로, 관련 통계가 있는 OECD 32개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보고서는 "4년제 일반대학을 수능성적에 따라 5개 분위로 구분한 후 분석하면 1분위 대비 5분위의 임금 프리미엄이 40~44세 구간에서는 50%에 달하기도 한다"며 "상위권 대학 졸업생과 하위권 대학 졸업생 간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에 대학 입시경쟁이 치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5월 발간한 '대입 N수생 증가 실태 및 원인과 완화 방안' 보고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한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상위권 대학, 직업의 안정성과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약계열 특정 학과에 대한 진학 열망이 커지는 것"이라며 "좋은 일자리를 확충하고 임금격차를 완화하는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학벌주의·물질주의·비교경쟁문화 완화를 위한 캠페인 등 범국가적, 전 국민적 의식 개혁 운동의 전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