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④] 언제까지 사후약방문…사회적 참사 유족 눈물 마를 날 없다
  • 정인지 기자
  • 입력: 2025.06.08 00:00 / 수정: 2025.06.10 09:10
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들 "참사 예방은 국가 책무"
강릉 급발진 사고 유족들 "결함 입증 책임, 기업이"
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촉구하는 것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법 개정은 더 이상 안 된다며, 국민 안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는 새로운 법안 제정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 /더팩트 DB
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촉구하는 것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법 개정은 더 이상 안 된다며, 국민 안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는 새로운 법안 제정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인근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 /더팩트 DB

6월3일 조기 대선으로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사회는 유례없는 혼란의 시간을 겪었다. 이번 선거는 계엄에 따른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만큼 사회 변혁의 변곡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더팩트>는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새 정부에 바라는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정인지 기자]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국민 안전이 국가의 책무라며 여전히 거리를 지키고 있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이 정부에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현행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법률 제·개정이다.

◆"정부가 아픔 달래줬으면"…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 생명안전기본법 '한목소리'

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촉구하는 것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법 개정은 더 이상 안 된다며, 국민 안전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는 새로운 법안 제정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노력해야 한다'는 모호한 표현에, 국가의 책무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순철 생명안전넷 사무처장은 "국가는 노력해야 할 주체로만 나와있을 뿐 어느 정도의 노력인지, 왜 노력해야 하는지는 명시되지 않았다"며 "국민의 안전권과 국가의 책무를 정한 조항이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문장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사람의 생명과 신체가 함부로 손상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는 점과 국가에게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생명안전기본법은 '사람의 생명과 신체가 함부로 손상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는 점과 '국가에게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지난 2003년 2월18일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도 주로 행정 절차 내용만 다루고 있어 재난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재난안전법은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 및 안전관리체제를 확립하고, 재난 대응 안전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박 사무처장은 "재난안전법에는 재난참사를 왜 막아야 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는 나와있지 않다"며 "'집행법'적인 성격이라 '기본법'으로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반면 생명안전기본법은 '사람의 생명과 신체가 함부로 손상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는 점과 '국가에게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생명안전기본법의 핵심 조항은 △모든 사람의 안전권 보장과 국가의 책무 명시 △피해자의 인권과 권리 보장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안전영향평가 △안전약자 보호 등이다. 법과 제도를 통해 국민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게 이태원·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주장이다.

이지현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국정 운영의 원칙과 방향으로 삼고, 사회적 참사가 재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초석을 다지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도 "새 정부에게 간곡히 요청드린다"며 "부디 우리에게 두 번의 절망을 안기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박래군 4·16재단 위원장은 "참사가 날 때마다 땜질식으로 보완만 하다 보니 구멍이 많은 상황"이라며 "미래에 또 다른 참사가 생겨 유족들이 재난안전법의 한계로 거리에 나와 특별법을 요구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명안전법은 첫 시작일 뿐 갈 길이 멀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처장도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일종의 관리나 시혜가 아닌 책무인 세상을 원한다"며 "일터에서 안전장치를 하지 않아서, 이윤 때문에, 책임자가 없어서 등 참사는 조금만 신경쓰면 막을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이던 이도현 군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가운데 유족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제조사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일명 도현이법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김영봉 기자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이던 이도현 군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가운데 유족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제조사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일명 '도현이법'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김영봉 기자

◆"차량 결함 입증을 왜 소비자가"…강릉 급발진 사고 유족은 도현이법 '촉구'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이던 이도현 군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가운데 유족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제조사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일명 '도현이법'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유족들은 당시 차량을 운전한 할머니의 책임이 아닌 급발진 사고임을 주장하며 KG모빌리티(옛 쌍용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운전자(할머니)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 밟았을 것으로 보여 이 사건 사고가 결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도현 군 아버지 이상훈 씨는 "재판부는 음향 감정 결과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씨는 1심 진행 과정에서 사비를 들여 법원이 선정한 감정인을 통해 정밀 음향 감정과 EDR(사고기록장치) 신뢰성 감정, 실도로 주행 감정, AEB(자동긴급제동장치) 작동 테스트 등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EDR에는 116㎞가 찍혀있으나 신뢰성 감정에서는 110㎞에서 5초 동안 풀악셀을 밟았다면 136.5㎞가 나왔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전방추돌경고음이 7차례 경고음을 냈음에도 AEB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차량 결함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씨는 "재판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 증거가 있었음에도 자의적인 추론에 기대 운전자 실수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판결을 내렸다"며 "모든 감정 결과를 외면한 것은 매우 분노할 일이며 사법의 책무를 저버린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 씨는 현재 1심 판결 파기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주말이면 강릉역에서 1인 시위도 열고 있다.

강릉 급발진 사고는 지난 2022년 12월6일 강원 강릉 홍제동에서 발생했다. 당시 할머니 A(68) 씨가 운전하던 티볼리 에어 차량이 굉음을 낸 후 교차로에 멈춰선 차량을 들이받고 600m를 질주하다 배수로를 박고 멈췄다. 사진은 지난 2023년 12월6일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이 씨의 집 도현 군의 방. /김영봉 기자
강릉 급발진 사고는 지난 2022년 12월6일 강원 강릉 홍제동에서 발생했다. 당시 할머니 A(68) 씨가 운전하던 티볼리 에어 차량이 굉음을 낸 후 교차로에 멈춰선 차량을 들이받고 600m를 질주하다 배수로를 박고 멈췄다. 사진은 지난 2023년 12월6일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이 씨의 집 도현 군의 방. /김영봉 기자

특히 이 씨가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도현이법의 국회 통과다. 현행 제조물책임법 제3조 2항은 소비자(피해자)가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입증해야 제조물의 결함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상 사용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한 사실, 그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 영역에 속한 원인으로 초래된 사실, 결함 없이는 손해가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이다. 현실적으로 제조사가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운 원인 등을 소비자가 규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지적된다.

이 씨는 지난 2023년 3월 '차량 결함을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국민동의 청원을 냈다. 청원에 5만명이 동의하면서 21대 국회에서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 등으로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후 이 씨는 지난해 6월 두 번째 국민청원을 냈다. 두 번째 청원 역시 9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22대 국회에서 8개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 씨는 "개인이 차량 결함을 증명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서 자동차 제조사로 전환해야 한다"며 "사고 이후 제조사로부터 어떤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 대응을 받지 못했는데, 도의적인 책임조차 지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와 국회에 도현이법 제정을 간절히 바란다"며 "이는 단지 제가 사랑하는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것만이 아닌 앞으로의 급발진 사고 피해자를 위한 공익적인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inj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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