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다빈 기자] 29일로 서울서부지법 폭동이 일어난 지 100일이 된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혐오 표현이나 폭력 선동이 난무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운영자를 규제하고 처벌까지 가능한 해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율 규제에 맞기고 있는 실정이라 현실적 제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 각종 음모론에 자극적 정보…혼란 부추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날 극우 성향의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미국정치 갤러리, 국민의힘 갤러리,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 일간베스트(일베) 등에는 혐중 정서를 기반으로 중국을 비하하는 각종 음모론이 쏟아졌다. "중국과 북한 간첩이 방화해 산불이 일어난 것, 산불은 반국가 세력의 테러", "중국 공안이 한국 경찰로 채용돼 일하고 있다", "명찰이 없는 경찰은 중국인이다", "SKT 해킹한 애들 뒤에 공산당이 있다더라" 등 자극적이고 근거 없는 정보들이 나돌며 혐오와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용인 기흥역 근처 사는 XX들 필독'이라는 제목으로 "기흥역 어딘가에 폭탄 숨겨놨다. 불꽃놀이 폭죽 개조해 만들었고 일주일 뒤 오는 30일 오후 6시 터지게 세팅해 놨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당국, 역사 관계자 등이 기흥역 내·외부를 수색했으나 폭발물 등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 때도 디시인사이드와 일베에는 "서울서부지법 후문으로 가서 담 넘고 경찰 스크럼 깨버릴 것", "방망이와 칼, 삼단봉, 너클 등 뭐든 좋으니 공격 무기 챙겨라", "바리케이드 뚫렸다. 들이받아 XX", "혁명이 시작됐다. 경찰 보이면 그냥 싹 다 패버려라" 등 폭력을 선동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폭동을 사전 모의한 정황도 포착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 탄핵 심판과 관련해 테러나 방화, 협박, 살인 등 범죄를 예고한 게시물도 끊임없이 게재됐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는 "소주병으로 화염병 만드는 법과 사용법", "(탄핵이 인용되면) 시체와 피로 한강은 검붉게 물드는 국민대혁명의 날", "탄핵 되면 낫 들고 간다. 간첩 놈들 없애 버리겠다" 등의 글들이 공유됐다.
◆ 규제 시급한데…해외는 의무화, 한국은 자율화
해외의 경우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혐오 표현이나 폭력 선동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 제정돼 엄격한 처별과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 형법 제130조 제1항에는 '국적·인종·종교·민족에 의해 규정된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해 혐오를 선동하거나 폭력적 또는 자의적인 조치를 유발하는 경우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독일은 지난 2018년 '소셜네트워크에서 법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네트워크 집행법)'을 시행하고 게시물 관리 책임을 온라인 플랫폼에 부여하고 있다. 이에 혐오 발언이나 테러 위협 등 불법 콘텐츠가 게시된 후 24시간 내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5000만 유로(한화 819억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2022년부터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불법 콘텐츠를 작성한 이용자의 IP 주소를 독일 연방범죄수사청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디지털 서비스법'을 지난 2024년 2월부터 전면 시행해 혐오 표현과 불법 콘텐츠, 허위 정보 등 온라인 유해 콘텐츠를 삭제 및 차단하는 등 플랫폼 사업자에게 통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온라인상 혐오 표현 확산 차단을 위한 행동강령 개정안을 디지털서비스법에 통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혐오 표현 근절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동강령에는 '참여 플랫폼 기업이 24시간 이내 신고 게시물의 최소 3분의 2 신속 검토', '비영리 혹은 공공단체가 각 기업의 혐오표현 검토 방식 모니터링 허용', '혐오표현 자동감지 도구 사용과 관련 게시물 추천 알고리즘 정보 제공' 등이 담겼다.
이에 반해 국내 대다수의 플랫폼은 자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자체 이용 약관에 따라 △다른 이용자 또는 제3자를 비방하는 내용 △음란물, 청소년 유해매체물, 불법촬영물, 욕설 등 공서양속에 위반되는 내용 △범죄행위, 불법 유해 정보와 관련된 내용 △개인정보,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명예훼손 하는 내용 등의 게시물 접근을 차단 또는 삭제하거나 이용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 이후 지난 2월10일 디시인사이드 일부 갤러리에는 '마이너 갤러리 접근 제한 안내. 위협, 폭력 조장 게시물 작성 자제 요청'이라는 내용의 경고 문구도 등장했다. 폭력을 조장하는 게시물을 올리면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는 안내가 포함됐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현재는 안내문구마저 사라진 상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불법 정보와 혐오 표현,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 등으로 인정되는 정보를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심의하고 플랫폼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방심위가 직접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에 접속 차단을 요청하거나 플랫폼사에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한계가 있다.
결국 실질적 규제가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만섭 강릉영동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플랫폼 자율 규제라 방송이나 신문에 비해 커뮤니티 규제가 느슨하다. 이론적으로는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스크리닝을 해 삭제하고 관리해야 하지만 숫자가 워낙 많아 제대로 되기 힘들다"며 "가짜뉴스와 혐오 문제가 심각하지만 아직 법제화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차원의 규제 기관이 있지만 실효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혐오 표현 등이 줄었다는 성과가 나지는 않는다"며 "콘텐츠 자체가 뉴스가 아니다 보니 언론중재위원회 등 피해 구제 기구를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현실적으로는 현재 있는 여러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는 방법이 있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어도 사법부에 호소해 법적으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규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년진보당 전국대학생위원회는 지난 28일부터 오는 5월18일까지 디시인사이드와 일베 폐쇄를 촉구하는 10만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서명이 시작된 지 반나절 만인 지난 28일 오후 11시30분 기준 6000명의 서명이 모였다. 청년진보당은 온라인 커뮤니티 규제 대책 협약을 요구하며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에게 서명운동 결과를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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