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 흉기난동' 현장에 추모 발길…"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
  • 이다빈 기자
  • 입력: 2025.04.26 00:00 / 수정: 2025.04.26 00:00
마트 앞 시민들 자발적 추모 공간 마련
눈물 흘리며 애도…"일상적 공간서 봉변"
지난 22일 오후 6시20분께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한 마트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으로 여성 1명이 숨진 가운데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째인 25일 피해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다빈 기자
지난 22일 오후 6시20분께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한 마트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으로 여성 1명이 숨진 가운데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째인 25일 피해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다빈 기자

[더팩트ㅣ이다빈 기자] 서울 강북구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한 마트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으로 숨진 여성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추모 공간에는 피해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사건 발생 사흘째인 25일 범행 현장인 마트 앞에는 '강남역 9주기를 앞두고 또다시 발생한 페미사이드 여성혐오 살인 사건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적힌 패널이 세워졌다. 패널에는 '이런 테러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 명복을 빕니다', '더이상 누구도 잃을 수 없다', '언니 하늘에서 별이 돼 편히 쉬세요' 등 손글씨로 적은 추모의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수십 개의 하얀색 국화꽃과 꽃다발, 화분, LED 캔들도 눈에 띄었다.

10대부터 대학생, 중년, 노인들까지 추모 공간을 찾아 모두 안타까움을 표했다. 헌화를 하거나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픔을 나눴다. 일부는 추모 글이 적힌 포스트잇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검은색 옷을 입은 30대 여성 김아연 씨는 "이 근처에 살고 있다. 같은 여성으로서 마트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살해 당한 것이 너무 마음 아팠다"면서 "범인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이 골목에서 여성 두 명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간에 어떤 남성이 말렸다는 증언도 있는데 그분은 공격 당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은 여성 테러 범죄라는 것을 명명화하고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10대부터 대학생, 중년, 노인들까지 추모 공간을 찾아 모두 안타까움을 표했다. 시민들은 마트 앞 추모 공간에 준비된 포스트잇과 펜으로 추모 글을 써 붙였다. /이다빈 기자
10대부터 대학생, 중년, 노인들까지 추모 공간을 찾아 모두 안타까움을 표했다. 시민들은 마트 앞 추모 공간에 준비된 포스트잇과 펜으로 추모 글을 써 붙였다. /이다빈 기자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도 피해자를 추모했다. 이모(14) 양은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깜짝 놀랐다. 평소 자주 들르는 마트인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면서 "학교에서 친구들도 이 얘기뿐이다. 흉기 난동 사건이 저희 동네까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피해자 분이 편히 쉬시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인근 주민들은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충격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들은 마트 앞에 한참을 서서 혀를 끌끌 차고 한숨을 쉬었다.

한 70대 남성은 "피해자는 죄없이 죽었는데, 죽인 놈들은 다 사형시켜야 된다"며 "법이 너무 약하다. 사람을 죽이면 세상에 못 나오게 해야 하는데 또 나오고 또 나오니까 반복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휴대용 장바구니를 끌고 가던 70대 여성도 "저녁 시간에 장을 보러 와 계산하다가 봉변을 당했다"며 "10여년을 여기 살아도 이런 일이 없었다. 마트에서 이게 무슨 일인지 직원은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인근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50대 이모 씨는 무료로 국화를 제공했다. 이 씨는 "돌아가신 분이 저희 엄마보다 젊다"며 "사실 처음엔 국화가 준비가 안돼서 다른 하얀 꽃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그냥 제가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국화를 샀다. 꽃도 금방 가져가셔서 조금 더 준비해 놓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전날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조성했다. 추모 공간에는 수십 개의 하얀색 국화꽃들과 꽃다발, 화분, LED 캔들이 놓여 있었다. /이다빈 기자
시민들은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전날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조성했다. 추모 공간에는 수십 개의 하얀색 국화꽃들과 꽃다발, 화분, LED 캔들이 놓여 있었다. /이다빈 기자

전날 밤에는 한 남성이 추모 포스트잇을 떼어내면서 추모객들과 충돌했다. 이 남성은 "고인을 기리는 것은 좋지만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는 말은 왜 적냐. 사회적 약자가 살해당한 것이지 왜 남녀 갈라치기를 하냐"며 "시민으로서 이걸 떼야 할 의무가 있다. 추모는 여성 단체에서 이득 보려고 하는 짓"이라고 고성을 질렀다.

대학생 송모(25) 씨는 "추모 공간이 너무 작다. SNS에서 한 남성이 포스트잇을 떼는 영상을 보고 하나라도 힘을 더 보태고 애도하고 싶어 이 자리를 찾았다"며 "여성들이 너무 많이 죽어 나가고 있고 사회가 여성 혐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앞서 30대 남성 A 씨는 지난 22일 오후 6시20분께 마트에서 흉기를 휘둘러 40대 여성을 다치게 하고, 60대 여성을 숨지게 했다. A 씨는 한 차례 공격으로 쓰러진 60대 여성을 옆에 두고 담배를 피웠다. 주변에 있던 한 시민이 말리려 했으나 A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60대 여성에게 몇 차례 추가로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과는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범행 직후에도 A 씨는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며 112에 자진 신고했고 경찰이 현장에서 현행범 체포했다. 경찰은 A 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한 뒤 정확한 범행 동기 및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answer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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