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윤경 기자] 최근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동물 1600마리 이상이 죽었다. 산불에 대비해 동물 대피소를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1일까지 경북 의성, 안동, 영덕, 청송, 영양 등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본 동물은 총 1994마리다. 1665마리는 죽고 329마리는 상해를 입었다. 야생동물 등 집계하지 못한 동물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별로는 강아지가 1944마리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고양이 48마리, 새 2마리다. 사망한 동물 1665마리 중 1662마리는 강아지였다. 대부분 식용으로 길러진 경우였다. 동물보호단체 등의 노력으로 구조된 동물은 200마리에 불과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동물들이) 짧은 줄에 묶여 있었고 그대로 타 죽은 아이들도 많았다', '도망치려 집채로 끌고 가다 죽은 아이도 있었다' 등 동물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문제는 산불 등 발생 시 동물들을 위한 대피소가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소유자 등은 재난 시 동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재해구호법은 제3조에서 구호 대상을 사람에게만 한정시키고 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비상대처요령에는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공지하고 있다.
봉사용 동물은 입장이 허가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농림축산식품부가 제공하는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다만 가이드라인에는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할 수 있는 집에서 가까운 대피시설 목록을 만들어놓으라'는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시설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 네티즌은 "반려동물이 싫고 지저분한 게 아니라 알러지 반응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며 "반려동물 관련 대피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네티즌은 "이번 산불이 재해급으로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은 아니다"며 "대체 대피소 지을 생각이 있는 거냐"고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22년 지방자치단체에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면서 반려동물과 같이 대피할 수 있는 '동반 대피소'를 지정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지난 2023년에도 해당 내용을 배포했고 이번 산불이 일어났을 땐 대피 방송 시 반려동물과 관련된 내용을 안내해달라는 내용과 함께 '임시 거주 시설'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데다 지자체에서도 현실적 한계 등으로 동반 대피소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자체는 산불 등이 발생하면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대피소 앞에 임시 천막을 설치해 반려동물을 관리하거나 동물보호소 등을 통해 임시 보호를 하고 있다.
이에 동물보호단체 등은 '동물 대피소' 설치나 '반려동물 동반피난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2일부터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권리 보장', '대피소에 동물 수용 시설·장비·인력 확보', '재난 대응 훈련과 매뉴얼에 동물 포함' 등의 조항이 담긴 '반려동물 동반피난법' 제정을 위한 성명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기준 4000여명이 서명한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재난 시 반려동물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동물 구조·보호 매뉴얼을 개정하는 등 제도 개선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주현 법무법인 유한 변호사는 "해외 사례를 보면 재난 메뉴얼 상에 반려동물과 같이 들어갈 수 있는 대피소를 따로 표시해 두거나 반려동물 가정을 위한 별개의 메뉴얼도 만들어져 있다"며 "한국도 마냥 대피소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룰을 마련해 둬야 현장에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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