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엔 공감, 현실은 업무폭탄"…고교학점제 운영 부정평가 56%
  • 조채원 기자
  • 입력: 2025.04.09 17:25 / 수정: 2025.04.09 17:25
'고교학점제 제대로 가고 있는가' 토론회
고교학점제는 2018년부터 시범 적용과 단계적 도입을 거쳐 올해 전국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됐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한 고등학교 교실. /더팩트 DB
고교학점제는 2018년부터 시범 적용과 단계적 도입을 거쳐 올해 전국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됐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한 고등학교 교실. /더팩트 DB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교육 전문가들이 고교학점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업무·행정 부담 경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는 대학 학사제도와 유사하게 운용되고 있지만 그에 맞는 시스템 구축이나 행정적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 등은 9일 국회에서 '고교학점제 제대로 가고 있는가'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와 토론에는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시민단체와 현직 교사 등이 참여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이수해 3년 간 192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를 말한다. 2018년부터 시범 적용과 단계적 도입을 거쳐 올해 전국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됐다.

백승진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은 발제에서 "고교학점제의 핵심 철학은 '학생 맞춤형 책임교육'이지만 3년 간 단계적 도입 단계에서 현실은 정책의 이상과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며 "교육부와 교육청은 이미 수많은 현장의 개선 요구와 실질적 어려움을 파악하고 있었는데도 구체적인 대책 마련과 지원체계 구축보다는 오직 전면 도입이라는 시간표만을 기다렸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고교학점제의 핵심인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문제는 가장 무책임하게 방치된 영역"이라며 "더 이상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지원하는 책임 있는 교육이 아니라, 교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과중한 행정 업무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 위원장이 이날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71.4%는 '고교학점제의 철학적·교육적 의미를 이해한다"고 답했지만, '고교학점제가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느냐'에서 부정 응답은 56.2%를 기록한 반면 긍정 응답은 19.6%에 그쳤다. 24.1%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교육부와 교육청 지원 수준에 대한 긍정 응답도 18.1%로, 부정 응답(49.5%)보다 훨씬 낮았다. 실행 상 어려움(복수응답)으로는 '교사의 수업 및 행정업무 부담 증가'가 7518건, 형식적 운영과 학교 현실 간 괴리(4218건),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운영의 어려움(5537건) 등이 상위에 올랐다. 조사는 지난달 17~31일 전국 9485명의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백 위원장은 "교사들이 고교학점제의 철학에는 공감하지만 실행 기반이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라며 "고교학점제의 실질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현장의 고충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학급 단위 중심으로 설계된 디지털 학사 행정 시스템 재구축 △교사의 업무와 행정 부담 경감 △ 선택과목 개설 조건 보장 등을 꼽았다. 교사들이 고교학점제로 출결 관리 업무 폭증을 호소하는 만큼 시스템을 개선하고,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진로·과목이수 지도 등 비수업 업무를 담당하는 교원 확보가 필요하단 얘기다.

김인엽 공주대 사범대 경영금융교육과 교수는 "교사 대다수가 고교학점제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모든 교육 기획을 교사가 전담해 실행하기 때문"이라며 동의를 표했다. "대학에서 강의실 배정, 수강신청 과정, 수업 실행, 평가, 평가물 제출, 성적 부여 등 일련의 절차는 대학 행정팀에서 전담해 지원하는데 학교 행정조직은 교육과정과 수업에 관련된 일들을 교사에게 모두 전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고교학점제 운용은 결국 대학 학사제도와 기본적인 틀이 같다"며 "대학과 유사한 형태의 행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도 "기존보다 여러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의 업무 부담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며 교사 1명의 지도과목 수를 최대 3과목까지로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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