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도 좋지만…천막·소음에 점령된 서울역 '몸살'
  • 정인지 기자
  • 입력: 2025.02.23 00:00 / 수정: 2025.02.23 21:07
12개 종교단체 매일 집회…관광객·직장인들 불편
인근 관광명소와도 대비…노숙인 지원 긍정 역할도
지난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한 종교단체가 천막 아래 마이크를 잡은 채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정인지 기자
지난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한 종교단체가 천막 아래 마이크를 잡은 채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정인지 기자

[더팩트ㅣ정인지 기자] "도쿄역 앞은 조용한 분위기라 관광객들이 사진도 많이 찍는데, 서울역은 기념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20일 한국 여행을 마치고 일본 도쿄로 돌아간다는 우츠키 시호(20)는 이렇게 말했다. 우츠키와 동행한 정하준(22) 씨도 "한 나라의 중심역이고 한국의 이미지가 되는 곳인데, 천막까지 차려놓고 집회를 여는 게 예뻐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역 앞에서 수년째 종교단체의 집회가 이어지면서 논란이다.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서울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노숙인 지원 등 긍정적 영향도 있어 이들 집회를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역 광장에서 전도 목적으로 집회를 여는 종교단체는 총 12곳으로 인원만 875명에 달한다. 개인 자격으로도 18명이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주로 낮 시간대 집회를 연다. 장소는 서울역 1~2번 출구 주변과 시계탑, 택시승강장, 야외흡연장 인근 등이다. 이들이 정확히 언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지는 관계당국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10~20년 전부터 집회를 해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대부분 천막을 세워놓고 있다. 서울역 대합실을 빠져나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이들 단체의 천막이다. 크게는 1번 출구 좌측으로는 3곳의 천막이 있다. 정면에는 1곳, 우측에는 3곳의 천막이 펼쳐져있다. 12곳 중 9곳은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음향장비까지 갖췄다. 스피커를 틀자 이들 단체의 목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소리를 보다 크게 하기 위해 스피커를 박스로 두른 곳도 있었다.

지난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한 종교단체가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음향 장비를 이용해 찬양 및 설교에 나서고 있다. 스피커 앞에는 종이 박스가 둘러져 있다. /정인지 기자
지난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한 종교단체가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음향 장비를 이용해 찬양 및 설교에 나서고 있다. 스피커 앞에는 종이 박스가 둘러져 있다. /정인지 기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광장으로 내려가는 시민들의 표정은 굳어갔다.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음악과 설교 소리가 한데 뒤엉켜 쏟아졌다. 시민들은 하던 대화를 멈추거나,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천막을 보고 "뭐야"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었다.

낮 12시 점심시간을 맞아 광장에 나온 직장인들도 천막을 힐끗 보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조성욱(37) 씨는 "근처 회사에 다니는데, 소리가 사무실까지 들린다. 지금은 추워서 창문을 닫고 있지만 날이 따뜻할 때 창문을 열면 소음이 더 하다"면서 "들을 때마다 '또 시작이네'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야외흡연장소에 있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집회 천막을 쳐다본 뒤 서둘러 담배꽁초를 털어넣고 자리를 뜨는 모습이었다. 20대 A 씨는 "여기서 일하다보면 매일같이 들으니까 만성이 되는데, 그래도 (광장에) 나오면 괴롭다"면서 "흡연자라서 흡연구역에 안 올 수도 없고, 최대한 짧게 있으려 한다"고 말했다.

옛 서울역 공간을 활용한 문화역서울284 건물 앞에도 종교단체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이날 문화역서울284에서는 전시가 열렸지만, 집회 소음이 건물 내부까지 들어와 웅웅거렸다. 가족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40대 박모 씨는 아이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시끄럽긴 하다. 그렇지"라고 웃어 보였다.

관광객들은 서둘러 광장을 가로지르며 고가도로 '서울로 7017'로 향했다. 서울로 7017은 지난 1970년 준공된 서울역 고가도로를 2017년 정비해 개방한 곳이다. 17m 높이 고가도로 위에서 서울 시내를 바라볼 수 있다. 고가도로 위에 모여 웃으며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서울역 앞을 피해가는 관광객들과 대비를 이뤘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 건물) 앞에 종교단체의 차량이 정차하고 있다. 차량 후면 유리에 성경 구절이 적혀있다. /정인지 기자
지난 20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 건물) 앞에 종교단체의 차량이 정차하고 있다. 차량 후면 유리에 성경 구절이 적혀있다. /정인지 기자

박 씨는 "종교단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시끄럽다. 저희야 시간을 때우려고 들어온 거긴 하지만 소리가 이렇게 들려서야 전시에 집중이 되겠냐"며 "서울역은 노숙인도 노숙인이지만 종교단체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다만 노숙인들은 종교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어 이들의 집회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들 덕분에 쉴 곳도 있고, 먹을 것도 생긴다는 것이다. 한 종교단체 천막 안으로 들어간 80대 B 씨는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받아 커피를 탔다. 종교단체 관계자는 B 씨에게 다가가 "식혜도 좀 드리냐"며 투명 페트병에 담긴 노란색 단호박 식혜를 건넸다.

B 씨는 "여기 오면 따뜻한 물과 커피를 준다"며 "이런 곳이 있어서 우리도 사는 것"이라고 했다. 70대 C 씨는 "이 늙은이가 그래도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게 의미가 크다"며 "오늘 이 교회에서 안 나오면 저 교회에 가고, 번갈아 방문한다"고 강조했다.

천막을 정리하고 있던 한 종교단체 관계자는 "우리가 아니면 누가 여기까지 와서 복음을 나누냐.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단체 목사 역시 "소음이 너무 크다면 줄이겠지만 우리 입장도 있다"고 말을 보탰다.

inj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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