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은 겨우 15년 지속됐다.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으며 제국이 '만세만세만만세' 이어지길 꿈꿨지만 삼세 만에 끝난다. 이어진 혼란기에 한(漢)의 유방과 초(楚)의 항우가 천하를 두고 각축한다. 이름하여 초한쟁패(楚漢爭覇)이다.
야구도 골프도 승패는 장갑을 벗어봐야 아는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 유방이 최종 승자가 된다. 해하성으로 쫓겨간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끝에 오강 전투에서 죽는다.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킨 장수는 단 28명이다. 항우가 최후의 순간에 탄식한 것은 시운(時運)의 부재였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상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면서 전쟁터까지 데리고 다닌 여인 우희를 걱정한다.
이 장면은 작고한 홍콩 배우 장국영이 출연한 1993년 영화 패왕별희(覇王別姬)의 배경이다.항우는 시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탄식했지만, 실제 승패를 가른 분기점은 두 번 있었다. 첫째가 한신을 놓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천하제일이므로 '넘버2'나 '넘버3'에 관심이 없었다.
항우의 홀대에 실망한 한신은 유방에게 간다. 여기서 인정받은 그는 마침내 항우를 해하성으로 몰아넣고 사면초가로 흔들어 몰락시킨다.나중에 유방이 한신에게 각 장수들의 능력을 평하게 했다. 누구는 1천 명 거느리면 족하고 누구는 1만 명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식의 평가가 이어진다.
이에 "너는 어떠냐"고 유방이 묻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대답한다. 바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그런데 왜 나(유방)에게 묶여 있느냐는 질문에 "병졸을 움직이는 데는 내가 낫지만 장수를 거느리는 것은 대왕이 한 수 위"라고 대답한다. 결국 인사정책인 거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던가.
유방에게는 장막 안에서 천리를 내다보는 장량이 있고, 싸우면 이기는 한신이 있으며, 군량과 재정을 총괄하는 소하가 있었다. 이 밖에도 백정 출신이거나 마부 출신까지 두루 능력에 따라 중용했다. 반면 항우에게는 훌륭한 책략가 범증 외에는 뛰어난 보좌진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한신은 "아녀자의 어짊(婦人之仁)"이라고 평했다. 권한과 권력을 나눠주는데 인색해 관인(官印)을 선뜻 내주지 못하고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모서리가 닳을 정도라는 거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한나라 때 저술됐으므로 상대적으로 항우의 속 좁음을 강조하려 했을까. 마치 권력의 파이를 떼어주기 아까워하는 듯 묘사한다.
하지만 어쩌면 항우 주위에 적당한 인재 풀(pool)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저 자리만 바라고 아첨을 입에 달고 사는 무능한 작자들 뿐이어서 선뜻 중책을 맡기기 망설였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외치는 인물 아래 인재가 모이기는 어렵다.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하는 인물 아래에는 알아서 기는 아첨꾼들만 모이기 십상이다.
그러니 동네 불량배의 다리 사이를 기어가는 과하욕(跨下辱)을 견디며 나름대로 포부를 키워 온 큰 한신이 머물 수 있겠나. 두번째는 홍문연에서 유방을 놓아준 거다. 먼저 관중에 들어가 진나라 수도 함양을 차지한 유방을 항우가 홍문의 연회에 부른다. 죽여 없애기 위해서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유방을 살려준다. 상대를 우습게 본 거다.
항우의 자만심이 우유부단함으로 이어졌고, 적을 가볍게 여기면 패한다는 경적필패(輕敵必敗)를 깨닫지 못했다. 유방은 잔도를 불살라가며 달아났다가 나중에 항우의 허를 찌르고 권토중래(捲土重來)한다. 승패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고 했다. 싸우다 보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는 거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은 단 한 번이다. 99번 이겼다가 마지막 결정적 전투에서 진 항우는 패자가 됐다.
반대로 99번 졌다가 마지막에 이긴 유방은 승자가 됐다. 전투는 이기기도 지기도 하지만 전쟁은 한 번 지면 그 뿐이다. 지금 우리네 정치판도 이 초한쟁패와 부분적으로 언뜻언뜻 닮았다. 예컨대 국정 최고책임자의 인사가 과연 능력위주로 이뤄졌나. 대체로 특정 대학과 특정 직역과 특정 인맥 중심으로 편중된 것은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서울대, 그것도 서울법대와 판검사 특히 검사 출신으로 채워진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다양성인데 몇몇 종류의 초목과 붉은 색깔의 꽃으로만 화원을 이룬 것은 아닌가. 항우가 귀족 출신이어서 평민을 초개처럼 여겼는데 현대판 귀족주의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엘리트주의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 그래서 지배와 피지배 계층을 분리해 일반 시민을 속칭 개돼지로 여긴 것은 아닌가.
한편으로 매주 혹은 매달 이뤄지는 이른바 ‘지지도’ 여론조사는 전투의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압도적인 지지로 계속 이긴다고 해서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99번 앞섰다가도 마지막 투표 결과에서 0.1%라도 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항우가 그랬다. 멀리 갈 것 없다. ‘어대창(어차피 대통령은 이회창)"이라고 했지만 두 번 다 졌다. 한번은 DJP연합에, 한번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 말이다. 초한쟁패의 보드게임 버전이 장기판이다.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상대편 왕만 쓰러뜨리면 된다. 차(車)나 포(包)나 마(馬)나 상(象)은 그저 장기판의 기물일 뿐이다.
얼마나 많이 잡히고 남아 있든 왕이 잡히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이다.여기에서 병졸은 가장 천대받는다. 다른 기물을 대신해 죽거나 길을 틔워주는 것이 주 역할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속성 뿐일까. 장기판에서 상대편 왕이 혼자 남았더라도 포(包) 둘만으로 절대 잡을 수 없다. 마(馬) 둘로도 못 이긴다. 상(象)도 마찬가지이다.
헌데 병졸이 둘이면 이길 수 있다. 이게 실질적인 힘이다. "나를 졸로 보느냐"고 비하할 위상과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를 졸(卒)로 칭한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1978년 무소속을 시작으로 사회당 통일민주당 통일국민당 민주당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 입성에 여섯 번 도전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바로 2020년 타계한 비운의 정객 임광순이다.
그가 1984년 출간한 자전적 수필집 제목이 ‘나는 졸(卒)이로소이다’였다. 그 부제가 인상적이다. "졸은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옆으로 비키는 지혜는 있지만, 뒤로 물러서는 비겁함은 없다."는 거다. 전투에서는 최전방 척탄병이자 희생양이며, 포(包)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한다.
모습과 위상은 초라한 듯해도 둘만 모이면 상대편 왕궁을 유린하고 제압할 수 있다는 거다. 만일 셋 넷을 넘어 다섯이 모이면 천하무적이고. 이렇게 졸(卒)로 치부되는 시민들의 기개와 지혜가 오늘날 민주화의 새벽을 열었다. 1987년 최루탄 터지는 명동에서, 종로에서 눈물을 흘려가며 넥타이를 풀어헤친 그들의 갈망이 민주의 아침을 밝혔다.
그 위대한 졸(卒)들이 2016년 겨울 촛불로 박근혜의 국정농단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2024년 12월에는 형형색색 응원봉으로 비상계엄에 맞섰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벌어지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심판은 마치 장기판의 왕과 그를 디딤돌로 넘나들던 포(包), 그리고 무소불위 날뛰던 마(馬)의 좌충우돌 같다.
"의원이 아니라 요원이다." "잡아들여 정리하라고 했지 체포라고 한 적은 없다"는 식의 억지가 판친다. 시민들을 만만한 졸(卒)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습게 보는 졸은 역사가 기록하듯이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금도 2024년 12월부터 시작된 비상(식적)계엄 단죄를 통해 민주회복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는 무기를 들고 나아가지만, 한국의 민중은 촛불과 야광봉으로 어둠을 밝힌다. 이들 위대한 졸(卒)들을 만만하게 어리숙하게 봤다가 큰 코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