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설상미 기자] "활동비로 고마운 아내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어요. 초록기억카페는 제 삶의 활력소입니다."
서울 양천구치매안심센터 1층에 위치한 초록기억카페에서 만난 초로기 치매환자 이재헌(가명, 63)씨의 이야기다. 지인들과의 약속을 잊어버리는 게 반복됐던 4년 전 어느날, 이 씨는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초로기 치매는 65세 이전에 조기 발병해 진단 받은 치매로, 노인성 치매에 비해 질환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뇌의 손상 정도도 크다. 당시 그의 나이 59세. 치매환자의 진단 연령이 평균 70세인데 11년이나 일렀다.
일찍 찾아온 병에 무기력에 빠져있을 즈음 우연히 지원한 초록기억카페는 그에게 새 동력이 됐다. 이 씨는 "새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배우자인 김정숙(가명, 65) 씨의 부양 부담 역시 줄었다. 초로기 치매환자의 경력 단절로 보호자는 간병과 경제 활동의 이중적 고충을 겪는다. 김 씨는 "일자리를 통한 사회 활동으로 무기력했던 남편에게 활기가 생겨 좋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센터 내 초로기 치매환자는 구청 시니어클럽 소속 바리스타 1명과 팀을 이뤄 함께 근무할 수 있다. 초록기억카페의 주요 업무는 △음료 제조 △스마트팜 관리 △일상생활 동작 훈련 등이다. 인지기능 및 활동 수행 능력 증진이 목표다. 수경 재배를 통해 직접 수확한 채소로 음료를 제조해 제공하는데, 상추와 사과가 들어간 '초록 주스'가 시그니처 음료로 꼽힌다. 특히 스마트팜 관리는 우울, 외로움 감소 등 원예치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센터는 초로기 치매환자의 경제활동은 물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목표로 한다. 이 씨와 함께 근무했던 바리스타 이수자(66) 씨는 "초로기 치매환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식 개선도 됐고, 일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구 관계자는 "초록기억카페는 1층에 위치해 시민들에게도 오픈할 수 있는 카페 구조이기 때문에 시장성이 좋은 편"이라며 "초로기 치매환자들에게는 자립과 자존감을, 지역 주민들께는 치매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만명 바라보는 초로기 치매환자...서비스는 노인성 치매 중심
국내 치매 돌봄 서비스는 대부분 노인성 치매 중심으로 초로기 치매환자들이 소외된 구조다. 50대 초로기 치매환자의 급증세 속 이들을 위한 맞춤형 복지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06년 4055명에 그쳤던 초로기 치매환자 수는 지난해 776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서울시는 이후로도 초로기 치매환자를 위한 지원을 넓혀갈 예정이다. 지난해 초록기억카페 1호점(강서구) 운영 결과, 환자의 자기효능감·우울감 개선 및 가족의 부양 부담 경감 등 효과성을 확인했다. 현재까지 지역구 3곳(강서·양천·도봉)에만 마련돼 있어, 올해 지역을 추가로 선정해 카페를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초로기 치매환자를 위한 작업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김태희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초로기 치매환자는 경제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경력이 단절돼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민들과 교류하는 사회 활동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서울시는 초로기 치매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초록기억카페 프로그램 등을 적극 지원하고, 앞으로 환자와 가족을 위한 지지 체계를 만들어 가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