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새해에는 한화오션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하청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길 바랍니다."
서울 중구 한화오션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하청노조) 소속 노동자들의 얘기다. 하청노동자들은 한화오션과의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하청노동자들과 한화오션 간 갈등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하청노동자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한화오션 19개 하청업체와 단체교섭을 재개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에 하청노조는 원청인 한화오션이 단체교섭에 직접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하청노동자의 협상 당사자는 협력업체고 원청이 나서는 건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하청노조 노동자 7명은 지난 7일부터 서울로 올라와 한화오션 앞에 녹색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김형수 하청노조 지회장은 "생산 공정을 보면 한화오션이 실질적인 사장이다. 모든 공정을 세우고 작업 지시를 하면 하청업체는 그에 따라 작업한다. 생산 수단도 한화오션 소유"라며 "교섭을 계속할수록 하청업체 대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현실만 더 분명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을 비롯한 노동자 2~3명은 설 연휴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학수 조직부장은 "가족들을 못 본 지 오래돼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가족들이 지지를 많이 해준다"고 했다. 이어 "파업 중이라 임금이 나오지도 않는데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며 "우리는 아직 2024년에 살고 있다. 단협이 결정돼야 새해를 온전히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기약없는 농성을 하는 이들은 시민들의 연대가 큰 힘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농성 소식이 SNS를 통해 알려지자 전국에서 각종 먹거리와 핫팩, 담요, 보조배터리 등을 보내왔다고 한다.
농성 첫날부터 달려온 대학생 이슬(23) 씨는 매일 아침 선전전을 함께하고 있다. 이 씨는 "하청노동자들이 첫날 1인용 텐트를 치는데 용역들이 이를 다 부수고 이에 한 분은 허라를 다쳐서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계엄 사태로 광장에 나오면서 현장에 적극적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강원 태백의 초등학교 교사인 남정아(53) 씨는 "하청노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세상 모든 노동자는 연결돼 있다는 걸 느낀다"며 "민주와 평등이 훼손된 시대에 이런 투쟁들이 힘을 모아 세상을 다시 나아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