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시간 철야에 안면마비까지…웹툰 보조작가가 사는 법
  • 정소양 기자
  • 입력: 2025.01.20 00:00 / 수정: 2025.01.20 00:00
불공정 임금·초과 근무·경력 불인정 노출
산업은 성장하지만 보조작가 현실은 열악
서울시-토스뱅크 표준계약서 개발로 진일보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토스뱅크와 손 잡고 웹툰 보조작가 표준계약서를 개발했다. 서울 성동구 무비랜드에서 열린 웹툰 보조작가 with 토스뱅크 캠페인의 모습. /정소양 기자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토스뱅크와 손 잡고 '웹툰 보조작가 표준계약서'를 개발했다. 서울 성동구 '무비랜드'에서 열린 '웹툰 보조작가 with 토스뱅크' 캠페인의 모습. /정소양 기자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작가 지망생 A(25) 씨는 웹툰 작가로 일할 기회가 생겨 계약서 작성 전 회사와 '조율'을 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기 전 주변에 알아보니 다른 작가들과의 임금차이가 3~4배가량 났다.

9년차 어시스턴트작가(보조작가) B씨는 회사와 계약서는 따로 작성하지 않고 회당 15만~20만원 정도 지불하겠다는 구두계약을 했다. 7개월 일해서 500만원정도 받았다. 월 약 71만원정도 받고 일을 한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 성동구 '무비랜드'에서 열린 '웹툰 보조작가 위드(with) 토스뱅크' 캠페인에서 공개된 현장 작가들의 현실이다.

보조작가 C 씨도 이 자리에서 "한 달에 30만원도 되지 않은 임금을 받고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A 씨는 "너무 많은 작가들이 병들고 사망하고 있다. (보조)작가들의 일하는 환경의 개선과 발전이 속도를 더 내길 바란다"고 했다.

웹툰작가들은 저임금은 물론 계속되는 초과 업무에도 시달린다.

현재는 메인작가로 일하고 있는 D씨는 보조작가 시절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채색만 하기로 했던 업무가 나중엔 배경 스케치, 후보정, 펜선 작업 등도 떠맡게 됐다"며 "작가보다 더 많이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라고 토로했다. D씨는 "그 당시 60시간 동안 안 자고 원고를 작업하다가 안면마비가 오기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보조작가들은 '경력'을 증명하는 수단도 없다. 하신아 웹툰작가 노동조합위원장은 "(보조작가들은) 크레딧을 딛고 성장하는건데, (제작사들은) 없애버리길 원한다"며 "저도 어릴 때 했던 작업 중 제 이름이 없는 작품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웹툰보조작가들은 임금과 업무에 대해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정소양 기자
웹툰보조작가들은 임금과 업무에 대해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정소양 기자

웹툰 보조작가는 특정 웹툰 작가와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한 뒤 웹툰의 개별 파트를 담당해 작업하는 작가를 말한다. 보통 웹툰 한 편이 만들어지려면 콘티(대본), 데생(밑그림), 선화, 채색, 보정 등 7~9단계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메인 작가뿐 아니라 각 작업을 돕는 보조 작가가 투입된다.

국내 웹툰산업 규모는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한 '2023 웹툰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웹툰 산업 규모는 1조8920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년 대비 20.8% 상승한 수치다.

서울시에 따르면 웹툰 작가수는 2021년 9326명에서 지난해 1만4268명, 보조작가는 2021년 1만2133명에서 지난해 1만8563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웹툰산업은 성장하는 반면 웹툰 보조작가들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많은 웹툰 보조작가들이 구두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제작사나 메인 작가에게 무리한 업무 요구를 받거나, 급여를 약속된 날에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2019년 보조작가 실태조사에 나선 결과 웹툰 보조작가가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는 22.3%에 불과했다. 더욱이 계약과 관련한 불공정한 경험을 겪는 경우는 50.8%로 조사되며 절반 이상이 불합리함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닥터 프로스트'를 연재한 이종범 웹툰작가는 "웹툰을 만들고 발표하는 창구가 다변화되면서 리스크 자체가 커지게 됐다"며 "그 리스크들이 보조작가나 개인 창작자에게 많은 부분이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웹툰 보조작가들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정소양 기자
서울시는 웹툰 보조작가들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정소양 기자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토스뱅크와 손 잡고 '웹툰 보조작가 표준계약서'를 개발했다.

웹툰 보조작가 표준계약서에는 임금 지급 방식, 검수, 경력증명 등 웹툰 산업과 보조작가의 업무 특성을 반영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웹툰 보조작가와 제작사(웹툰 메인작가) 간 계약 시 활용할 수 있다. 상호 협의 하에 대금 지급 방식과 납품·검수기한을 정하도록 하고, 보조작가가 참여한 작품은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송호재 서울시 민생노동국장은 "공정한 계약을 위한 웹툰 보조작가 표준계약서를 지난해 개발한 데 이어, 올해는 더욱 간편하게 쓸 수 있도록 모바일로 지원한다"며 "이번 모바일용 지원은 민관이 함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앞으로도 프리랜서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다양한 민관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유진 토스뱅크 매니저는 "최근에서야 데뷔 작가에 대한 보호가 생겼고, 보조작가에 대한 보호는 더 보이지 않고 있다. '표준계약서'가 등장한 건 이 직업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문 매니저는 "이전까지는 보조작가의 계약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며 "표준계약서는 어떤 것이 자신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조항인지, 무엇을 고용주와 합의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js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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