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귀가 되어주세요"…전국 최초 청각장애체험관 가보니
입력: 2025.01.14 00:00 / 수정: 2025.01.14 00:00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별관 4층 마련
"수어 인식 개선 위한 프로그램 마련"


전국 최초로 마련된 서울시 서대문 농아인복지관 내 청각장애체험관 한쪽 벽면에 그려진 귀 모양 그림 위에 비장애인들의 귀 사진들이 붙어 있다.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되겠다는 의미로 체험관을 다녀간 사람들의 귀 사진을 동의 하에 붙여놓는다고 한다./설상미 기자
전국 최초로 마련된 서울시 서대문 농아인복지관 내 청각장애체험관 한쪽 벽면에 그려진 귀 모양 그림 위에 비장애인들의 귀 사진들이 붙어 있다.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되겠다"는 의미로 체험관을 다녀간 사람들의 귀 사진을 동의 하에 붙여놓는다고 한다./설상미 기자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이식? 이지? 무슨 단어인지 진짜 모르겠어요."

13일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서울시 서대문농아인복지관. 말하는 사람의 입모양으로만 언어를 파악하는 독화체험 중 계속되는 '땡'에 취재진과 직원 사이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귀를 막은 채 화이트보드에 네 차례나 답을 써봤지만, 모두 오답. 입모양을 좀 더 크게 해 답을 알려주려는 직원의 노력도 소용없었다. "답답하다"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연신 나올 때쯤, 직원이 정답이 적힌 A4를 들어 보았다. 입모양만 보고는 절대 쉽게 알 수 없는 단어. 답은 '의지'였다. 그나마 쉬운 단어는 '이사'. 그마저도 '이상'이라고 썼다. 단어에 'ㅇ'이 들어가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 5문제 모두 몇 번을 반복한 끝에 답이 나왔다. 체험관 한쪽에 적혀진 헬렌켈러의 "시각장애는 사물과 떨어지게 하지만, 청각장애는 사람과 멀어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서대문농아인복지관은 지난해 12월 19일 전국 최초로 ‘청각장애체험관’을 마련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 청각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열렸다. 기존 복지관의 별관(동행관)을 증축해 4층 공간에 마련됐다. 증축한 복지관 별관은 지하 2층~지상 9층으로, 3392㎡(1026평) 규모다. 기존 본관(993㎡)의 약 3.4배에 달한다.

13일 <더팩트> 취재진이 서울시 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독화체험 중이다./설상미 기자
13일 <더팩트> 취재진이 서울시 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독화체험 중이다./설상미 기자

4층에는 △청각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영상을 보여주는 영상체험관 △난이도별 독화 체험과 청각장애 체험을 할 수 있는 소통체험관 △농문화 정보와 청각장애인 보조기구를 소개한 청각장애이해관 △지화 만들기 체험 등이 이뤄지는 동행결심관으로 구성됐다.

청각장애이해관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초인등, 보이는 화재경보기, 영상전화기, 자막 안경, 청각장애인 보조기구 등이 마련됐다. 자막 안경은 안경을 쓰고 대화할 때 실시간으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상대방의 말을 인식해 안경 화면에 자막으로 띄우는 방식이다. 다만 안경이 무거워 착용이 불편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음성의 경우 혼재될 수 있어 자막 인식에 한계가 있다.

보이는 화재경보기의 경우 청각장애인이 화재시 경보가 울려도 소리를 들을 수 없어 화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고안된 기기다. 초인등 역시 소리 대신 빛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복지관은 청각장애인 가정을 대상으로 한 초인등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복지관 관계자는 "화재 경보음도 초인종 소리도 비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지만, 청각장애인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기기들"이라고 설명했다.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 마련된 청각장애체험관./서울시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 마련된 청각장애체험관./서울시

동행결심관은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의 소통 창구 역할에 집중했다. 한 쪽에 마련된 투명 상자 안에는 비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소리가 적힌 포스트잇이 촘촘히 붙어져 있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 등 대부분 자연의 소리였다. 또다른 한쪽 벽면에는 그려진 귀 모양 그림 위에 비장애인들의 귀 사진들이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청각장애인들의 귀가 되어주는 데 동참한다는 의미로 비장애인들의 귀를 사진으로 찍어 붙여 놓는다고 한다.

복지관은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애가족지원사업과 '코다'(농인 부모를 둔 자녀)를 위한 방과 후 학습 지원 및 또래 커뮤니티 구축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수어 인식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오는 2월에는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초급반 수어 교실을 진행한다. 복지관 관계자는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비장애인들과 달리 문법 처리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와 수어는 다르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sno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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