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떠나고, 환자 줄면서 직격탄
매출 급감에 곳곳 공실…"돌아오길"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인근 명물길에서 영업 중인 상인들은 하나같이 "안 그래도 안 좋은 경기에 의정갈등이 더해지면서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사진과 기사는 무관함. /더팩트 DB |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이다빈·정인지 인턴기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병원 인근 상인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전공의 등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환자까지 줄면서 덩달아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상인들은 "안 그래도 경기가 안 좋은데 의정 갈등이 더해지면서 코로나19 때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1시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인근 명물길에 있는 2층짜리 카레 전문점은 1층만 열어둔 채 영업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지만 7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매장에는 3명의 손님만 식사 중이었다.
점주인 권현기(47) 씨는 "코로나 때보다 최근 1~2년이 더 힘들다"며 "신촌 상권도 죽었고 경기도 안 좋다. 코로나 영향도 있었는데 의정 갈등이 또 더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권 씨는 "홀 기준으로 코로나 전 대비 매출 약 40% 떨어졌다"며 "예전에 많이 오던 의사들은 이제 거의 안 온다. 갈등이 더 길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근 고깃집의 경우에도 10여개의 테이블을 둔 홀에 손님은 2명뿐이었다. 가끔 들려오는 손님들의 대화와 노랫소리가 식당을 메우기에는 모자랐다.
점주 문영식(39) 씨는 "특히 회식이 없어져 매출 20%가 감소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문 씨는 "의정 갈등 전에는 의사들이나 행정실 직원들도 많이 왔다"면서 "요즘은 '먹을 분위기가 아니다'고 하더라. 의대생들도 마찬가지로 안 온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인근 명물길에는 공실이 눈에 띄었다. 한 공실은 간판에 '신촌 대표명당 통전세 단기임대 가능'이라 쓰여있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정인지 인턴기자 |
이어 "고깃집 운영을 한 5년 중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라며 "코로나 때는 옮길 수 있는 병이다 보니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은 말이 안 된다. 상인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더욱 힘들다"고 강조했다.
2018년부터 자리를 지킨 인근 양식당도 매출이 20~30% 줄었다. 점주 신승우(45) 씨는 "코로나 때는 영업제한 단계가 있지 않았냐. 코로나 때보다 어렵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고 전했다. 그는 "의사와 정부가 주변 상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방식이 극단적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날 명물길 곳곳에는 공실이 눈에 띄었다. 골목에 형광등과 조명을 켜둔 가게 사이로 아무것도 없는 공실만 5개 이상이었다. 거리 곳곳에는 상가·건물 임대 현수막과 붉은색 글씨의 '명당', 노란색 글씨의 '통전세' 등이 내걸렸다. 한 공실은 간판에 '신촌 대표명당 통전세 단기임대 가능'이라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부동산중개소를 운영 중인 강혜진(48) 공인중개사는 "의정 갈등이 확실히 영향이 있다"며 "특히 대로변이나 메인 대학로가 아닌 대학병원으로만 돌아가는 동네와 골목은 타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매출 감소로 아예 가게 운영 시간을 줄인 식당도 있었다. 고깃집 맞은편 25년째 영업을 이어온 중식당도 예외는 아니다. 중식당 대표 총복자(68) 씨는 "저녁 회식이 너무 없어서 오후 10시에 닫던 가게를 8시30분이면 닫는다"고 했다. 총 씨는 "옛날에는 8시30분에도 의사들이 와서 10시까지 회식을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인건비 등 손해가 너무 커 일찍 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하루빨리 의정갈등이 봉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 인근 골목에서 백반집을 운영 중인 오대근 씨는 " 정부나 의료계나 조금씩 타협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병원 인근 골목 상권은 이따금 지나가는 행인 1~2명을 제외하곤 대체로 조용했다.
어린이병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삼계탕집은 손님이 없어 직원들끼리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점주 이서연(60) 씨는 "매출이 3분의 1 줄었다"며 "의정 갈등이 빨리 해결돼서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환자들이 사라진 것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 씨는 "의사랑 의대생도 그렇지만 삼계탕집 특성상 환자들이 많이 오곤 했었다"며 "병원복 입고도 오고 진료 보고 나와서도 왔었는데 지금은 오질 않아 허전하다"고 전했다.
병원 옆 골목 들머리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반집에는 식사 중인 손님 2명이 전부였다. 점주 오대근(62) 씨는 "죽을상"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오 씨는 "병원 옆이니까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 많이 왔었는데 오는 손님 자체가 줄었다"며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때는 장사가 안되면 지원금이라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때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를 바랐다. 오 씨는 "우리 같은 사람이 말한다고 해서 영향은 없겠지만 정부나 의료계나 조금씩 타협하면 좋겠다"면서도 "정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거 같아 앞으로 2년 넘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라고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