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년제 여대 7곳 중 6곳 연대 의사 표명
"과격 반응" vs "학생들 입장 이해"…대학가 논쟁
13일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본관 앞 학생들이 국제학부 외국인 남학생 입학 항의의 의미로 벗어둔 학과 점퍼가 놓여 있다. /이다빈 인턴기자 |
[더팩트ㅣ사건팀]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촉발된 남녀공학 반대 시위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전국 4년제 여대 7곳 중 5곳이 동덕여대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성신여대는 당장 오는 15일 총학생회 주도로 단체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13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날까지 광주여대와 덕성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동덕여대 총학과 연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 4년제 여대 7곳 중 이화여대를 제외한 6곳에서 남녀공학 반대 시위에 나선 것이다.
성신여대와 덕성여대는 이미 시위에 동참하는 등 학생들 반발이 거세다. 성신여대 학생들은 학교가 2025학년도 신설되는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 입학을 허용한 것을 두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돈암수정캠퍼스 바닥 곳곳에는 검정색 스프레이로 '자주 성신의 주인은 여성이다', '남자 아웃(OUT)'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교내 게시판에는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 결사 반대', '여대가 필요 없는 자들은 제 발로 여대를 떠나라' 등 대자보가 부착돼 있었다.
행정관과 수정관 앞에는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 반대'라고 적힌 근조화환 60여개가 늘어서 있었다. 잔디광장에는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벗어둔 학과 점퍼 200여개도 놓여 있었다. 중앙도서관 입구에는 '한번 여대는 영원한 여대', '이름만 성신여대? 구성원도 여자만' 등 쪽지들이 눈에 띄었다.
성신여대 학생들은 오는 15일 오후 4시 총학 주도로 단체 시위를 진행하기로 했다. 성신여대 총학은 "학우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목표라서 단체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며 "학교 본부가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과 남녀공학 전환은 관계가 없다'고 밝혔지만 공문이나 입장문 등으로 확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캠퍼스 학교 게시판에는 '동덕여대 공학 전환의 전면 철회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총학 명의 대자보가 부착돼 있었다. 덕성여대 설립자인 차마리사 동상이 세워진 언덕 위에도 동덕여대에 연대하는 의미로 학과 점퍼 110여개가 놓여 있었다. 곳곳에는 '동덕여대를 응원한다', '학내 민주절차를 무시하고 학생 의견 묵살하는 동덕여대 본부는 정신을 차려라',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등이 적힌 종이도 있었다.
윤지인 덕성여대 총학생회장은 "여대는 물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라며 "여대가 설립됐던 것도 사회적 편견과 성차별이 만연한 환경 속에서 (여성이) 교육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남녀공학 전환은 안전한 공간을 빼앗는 것이다. 우리도 릴레이 대자보 등을 통해 연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13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캠퍼스 정문 앞 학교 게시판에는 '동덕여대 공학 전환의 전면 철회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총학생회의 대자보가 부착돼 있었다. 덕성여대 설립자인 차마리사 동상이 세워진 언덕 위에도 동덕여대에 연대하는 의미로 학과 점퍼 110여개가 놓여 있었다. /김명주 인턴기자 |
광주여대와 숙명여대, 서울여대도 각각 입장문을 발표하고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서울여대 총학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동덕여대 본부는 학우들이 '얌전하고, 고분고분 따르며 만만하기에' 독단적 결정을 지은 건지 묻는다"며 "대학본부는 여대의 설립 이념을 필히 되새겨야 하고 서울여대는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이 철회될 때까지 모든 여성과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숙명여대 총학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여성'이 근간이 되는 여대가 더이상 여성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면 그 존재 이유는 무엇이냐"며 "대한민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여대는 존재 이유를 잃지 않는다. 이 사회의 여성만을 위한 공간인 모든 여대와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광주여대 총학도 지난 11일 입장문을 내고 "재학생들의 의견을 도외시하고 공학으로 전환하면 과연 학생들을 위한 학교라고 할 수 있겠냐"며 "동덕여대 본부의 일방적 공학 전환 사태로 곤경에 처해 있을 동덕여대 학우들과 마지막까지 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동덕여대에서 남녀공학 전환 논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촉발됐다. 동덕여대는 지난 11일부터 연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학생들은 성북구 월곡캠퍼스 본관과 종로구 혜화캠퍼스, 강남구 청담캠퍼스 모든 건물을 점거하고 수업을 거부한 채 학교와 대치 중이다.
동덕여대 총학은 "대학본부는 여대의 존재 의의를 다시 한번 상기하라"며 "(학교 측의) 무모한 공학 전환 철회를 요구하며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거론되지 않길 바란다"고 규탄했다. 이에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은 "공학 전환은 학교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며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소통이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여대를 중심으로 남녀공학 반대 시위가 확산되면서 대학가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부산대 재학생 A 씨는 "개인적으로는 (시위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학교 측에서 공학으로 전환한다고 못박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논의 중이라고만 했는데 바로 들고 일어서는 것은 설레발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대안 중 하나인데 급하고 과격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서강대 재학생 B 씨는 "재정난을 생각하면 학교 입장도 이해되지만 또 학생들 입장도 이해가 된다"며 "타 학교 일이지만 우리 학교 내에서도 논의가 활발하다"고 전했다.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C 씨는 "학생들에게 아무 말도 없이 강제로 전환한다는 것 자체가 학생들을 모욕하고 무시하는 행위"라며 "여대가 여대로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공학으로 바꾼다는 건 학생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