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0년차 길냥이 급식소…개체수 조절 효과↑
전문가들 "TNR 위해 급식소 필요…관리 강화해야"
길고양이 급식소는 길고양이들이 와서 밥과 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사진은 급식소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길고양이 모습. /독자 제공 |
8월8일은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이 정한 '세계 고양이의 날'이다. 올해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된 지 1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더팩트>는 개체수 조절 효과를 평가받는 급식소 운영의 실태와 동물학대 방지에 요긴한 민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2회에 걸쳐 살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언제든지 밥을 먹을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지 않아도 되니까 건강할 것 같아요."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1동 주민센터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강모(12) 군은 조그마한 직사각형 상자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상자 안에는 네모난 플라스틱 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한 통에는 사료가, 한 통에는 물이 채워져 있다.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온다. 요즘같이 더울 땐 늦은 오후부터 새벽 사이 방문한다. 인근 파출소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한다"며 "집이라고 생각하고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 했을 길고양이를 위해 마련된 '무료 급식소'다.
◆길고양이 급식소 시행 10년…개체수 조절 효과↑
길고양이 급식소는 배고픈 길고양이들이 와서 마음껏 식사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다. 지난 2013년 서울 강동구에 처음 설치돼 전국 지자체로 확산했다.
급식소가 들어서기 이전, 길고양이들은 주택가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다녔다. 영양 상태가 불량했고 상한 음식물을 섭취해 질병에 걸리는 일이 잦았다.
이에 이른바 '캣맘'들은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을 줘서 개체수가 늘어난다'는 주민 반발이 잇따랐고 실제 늘어난 고양이들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골칫거리였다.
길고양이들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훼손하고 한밤중에는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했다. 우는 소리가 심해 "시끄럽다"는 불만도 컸다.
그러다 만화가 강풀 작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차려 모이는 길고양이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시켜 번식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길고양이에게 깨끗한 먹이를 줄 수도 있고,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서울 강동구 암사1동 주민센터 앞 길고양이 급식소에 사료가 가득 채워져 있다. /조소현 기자 |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민원은 줄었고 길고양이들은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받았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 울음소리가 심하다거나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훼손한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왔는데 현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TNR(고양이 중성화) 사업에도 효과적이었다. 구청 관계자는 "급식소 사업과 TNR을 병행한 결과, 개체 수 감소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2019년까지는 중성화 신청 건수가 늘었으나 이후부터는 줄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정아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TNR이 이뤄져야 한다"며 "밥만 주면 번식률이 높아진다. 암컷은 몸이 망가질 수 있고 질환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서울 8개 공원 설치…일부 주민들 '테러'도
서울시는 지난 2016년부터 동물보호 시민단체와 협력해 서울시내 8개 공원에 직영 급식소 46개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주체는 개인 봉사자들이다.
7년 차 케어테이커(고양이를 돌보는 시민)인 40대 A씨는 일주일에 세 번 서울의 모 공원에 사료나 참치 통조림 등을 가져다 놓는다. A씨는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길고양이들이) 늦은 오후에 (급식소에) 온다"며 "오후 4~5시 밥을 두고 가면 오후 11시쯤 자유롭게 와 밥을 먹고 간다"고 했다.
케어테이커들은 길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도 책임진다. 구청에 신고해서 포획하고 지정 병원에 데려가 수술한 뒤 다시 있던 지역에 방사한다. 위생관리도 이들의 몫이다.
힘들지만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A씨는 "고양이를 데려와 밥을 먹이다가 갑자기 '나가 살아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야생성이 떨어진 아이들은 먹이를 찾아 헤매다 죽기도 한다. 인간의 잘못으로 아무런 잘못 없는 고양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부터 동물보호 시민단체와 협력해 서울시내 8개 공원에 직영 급식소 46개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낮잠을 자는 고양이. /김세정 기자 |
길고양이들이 눈에 밟혀 시작한 일이었지만 여러 갈등을 마주해야만 했다. 애지중지했던 급식소는 파손되기 일쑤였다.
A씨는 "어제도 급식소가 테러당했다"며 "급식소 위치를 밝히지 않는 것도 고양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봉사자들도 시비 걸고 욕설을 하는 분들 때문에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고양이들에게 발길질을 하고 물이나 음료수 등을 뿌린다. 사료에 술을 타기도 한다. A씨는 "고양이들이 급식소에 들어가 있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때면 '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직감한다"고 말했다.
◆"중성화 위해서도 급식소 필요…제도화해야"
전문가들은 TNR 사업을 위해 급식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급식소가 없으면 포획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정아 활동가는 "TNR 고시에 급식소 관련 내용을 넣고 (급식소에서) 밥을 주며 포획틀을 설치해 중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식소 관리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웅종 연암대 동물보호계열 교수는 "현재는 개인 봉사자들이 급식소를 관리하지만 주민과 마찰이 심하다. 지자체가 동물보호조례에 내용을 추가해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