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암표 판매행위는 피서객이나 귀행객들의 심리를 악용해 부당 이득을 올리는 나쁜 범죄다. 휴가철을 앞두고 암표상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구속기소했다."
1996년 7월 28일자 조간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4000원 이득을 취한 암표상을 구속기소하며 법과 정의에 불타오르는 이 검사는 20년 후 어떻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법과 정의를 지키지 못하고 구속됐다. 이 정의감 넘치는 검사는 다름 아니라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진경준 검사장이다.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하던 진 검사장의 몰락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다. 특히 진 검사장이 걸어온 길을 보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다. 진 검사장의 과거와 현재까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1등' '첫 번째' 등이다.
그는 1988년 서울대학교 재학 중 30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듬해엔 33회 행정고시도 합격했다. 진 검사장은 모든 검사가 선망하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초임지 발령을 받았다. 연수원 21기 검사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임관 성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에는 공직자 해외연수를 활용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을 수료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어 2004년에는 서울대 법대에서 헌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검사 생활에서도 법무부 검찰국의 국제형사과장, 형사기획과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등 일선 검사들이 선망하는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검사장 자리까지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했다. 언제나 1등, 첫 번째였던 그는 올해 3월 공개한 공무원 재산 순위에서도 156억 5000만 원, 증감액 30억 6700만 원을 기록하며 역시나 1위를 기록했다.
언제나 1등, 첫 번째를 추구하던 그는 역시나 비리검사로 구속되면서도 첫 번째를 기록했다. 검찰 수립 68년 만에 현직 검사장 중 첫 번째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진 검사장의 비위 금액은 120억 원대에서 140억 대 수준으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친구 김정주 넥슨 창업주로부터 주식 매입 자금을 받았다. 이 돈으로 비상장 주식을 사고 되팔기를 반복하면서 126억 원의 시세차익을 봤다. 천재의 재능이 엉뚱한 데로 쓰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 검사장은 넥슨 법인 차량을 처남 명의로 받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탈세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처남 명의 청소 용역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게 했다.
독일 관념론 철학을 완성한 헤겔은 '몰락'을 '자기 근거로서의 본래 존재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천재 검사의 몰락'으로 불리는 진 검사장은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몰락이 부끄럽다거나 초라해지는 존재로서가 아닌 20년 전, 법과 정의를 우선했던 본래의 존재로 되돌아가는 계기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