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해양생물학 정립한 실학자
  • 강희정 기자
  • 입력: 2015.03.01 11:58 / 수정: 2015.03.01 11:58

정약전,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저술에 힘쓰며 역시 유배돼 있던 동생 정약용과 편지로 문안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직접 해양 생물을 관찰 정리해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약전,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저술에 힘쓰며 역시 유배돼 있던 동생 정약용과 편지로 문안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직접 해양 생물을 관찰 정리해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약전, 유배지서도 정약용과 편지 주고 받아

정약전은 실학사상의 집대성자로 추앙받는 정약용의 형이다.

정약용은 어렸을 때부터 둘째 형이자 친구였던 정약전을 유독 잘 따랐고 유배 생활 중에도 그에게 많은 의지를 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약전이 죽은 후 정약용은 애통한 심정이 담긴 글을 작성한다. 글에서 정약용은 "정약전 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였는데 이제는 잃어버렸으니 앞으로는 비록 터득하는 바가 있더라도 어느 곳에 입을 열어 함께 말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아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자식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형제 종족들이 모두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처지에 나를 알아주던 우리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슬프지 않으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약전은 1758년(영조 34) 3월 1일 태어나 1776년(영조 52)에 호조좌랑이 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오게됐다. 정약전은 특히 서양의 학문과 사상에 심취한 이벽, 이승훈 등 남인 인사들와 친밀히 지내며 서양의 역수학(曆數學)을 접하고 나아가 천주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통은 정약용이 천주교와 관련을 맺게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1783년(정조7)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된 정약전은 1790년 증광문과에 응시, 병과로 급제한 후 전적·병조좌랑의 관직을 역임했다.

[더팩트 | 강희정 인턴기자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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