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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조선으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나왔다. 영국의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자서전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책과함께)다. '영국 화가가 그린 아시아 1920~1940'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영국 여성이 조선을 비롯해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며 풍경을 스케치하고 감상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책을 열면 키스가 조선을 비롯해 일본, 필리핀,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영국에 살고 있는 언니에게 쓴 편지글이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조선의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모습
100년전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국의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의 그림을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듯 조선의 풍속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919년 3월 처음으로 조선을 찾아 여행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그들을 화폭에 담았다. 키스는 이후 1921년과 1934년에 서양 화가로는 최초로 서울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기도 했다.
키스는 경북궁을 비롯해 동대문, 금강산 등 조선의 역사적 명소 뿐 아니라 색동 저고리를 입고 외출한 아이들이나 의관을 정제하고 자리에 앉아있는 고관대작, 곰방대를 들고 있는 학자, 결혼식을 앞둔 새 신부,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 등 조선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꼼꼼하게 관찰해 스케치북에 담았다. 이 그림들은 100년 전 조선의 풍속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글을 읽노라면 호기심 많고 인정 많은 키스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키스는 금강산을 여행할 때 짐을 들어준 한국인 짐꾼에 대해 "침착하고 용감하고 친절하고 사려깊고 잘 참아주고 성실하고 다정했다"고 썼다.
전통혼례를 올리는 잔칫집에서 결혼식을 구경한 소감을 쓴 대목도 재미있다. 음식을 준비하랴 손님을 맞이하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신부의 어머니는 잔칫집에서 가장 지저분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도 바쁜 나머지 꾸밀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금은 가볼 수 없는 북녘땅을 유람한 소감과 풍경을 담은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마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 원산의 밤 풍경이나 함흥 아녀자들이 아침에 길거리에 서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담은 그림, 금강산 절의 부엌에서 가마솥에 밥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 등이 눈길을 끈다.
◇키스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자료 수록
이 책은 엘리자베스 키스의 인간적인 면모나 업적 등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다. 수십년간 키스를 연구해온 번역자 송영달 박사가 그동안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엘리자베스 키스의 삶과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책 말미에 수록했기 때문이다. 송 박사는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행정학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하면서 키스를 알게 돼 수십년동안 키스의 저서를 번역하는 것은 물론 전시회를 기획하는 등 키스를 세상에 알리는데 활약해온 사람이다. 이 책에도 원서에는 수록되지 않은 자신의 소장작품까지 모두 100여장의 그림을 수록해 책을 풍성하게 했다.
송 박사는 키스가 그림을 잘그리는 화가였을 뿐 아니라 한국을 무척 사랑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밝히고 있다. 폐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실을 기획한 셔우드 홀 박사가 키스에게 도안을 맡겼을때 기꺼이 수락했다는 점이나 일본에 의해 파괴된 조선의 건축물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대목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밖에 1920~1940년대 중국, 필리핀, 일본,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한 글과 그림도 수록돼있어 아시아 국가들의 이색 풍속을 감상하는 재미도 크다. 2만5000원.
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