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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의 끝판, 무질서 속의 질서, 세계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3억3000 신(神)의 나라, 수학의 나라, 후추의 원산지, 향신료길(스파이스 로드)의 중심지, IT강국 등.
이 모든 수식어는 바로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저마다 다른 수식어처럼 인도 여행은 여행자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다. 뭔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행을 한다면 인도를 가야한다. 또 많은 것을 버리기 위해서 하는 여행이라면, 그 역시 인도를 가야한다. 인도는 무척 넓다. 상상 속의 인도와 가장 다르면서도,인도의 모든 것이 잘 갖춰진 곳, 서남부 케랄라 주(洲)를 소개한다. 마침 인도 최대 민항 제트에어웨이즈의 다양한 한국행 루트 개설로 하늘길이 넓어졌다.인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상상하고 있는만큼, 다른 여행자들과 똑같은 추억을 나눠가지기 싫다면 케랄라 주를 가봐야 한다. 물론 편견보다 훨씬 좋지만, 인디아나 존스 박사처럼 아슬아슬한 모험을 기대하고 있다면 케랄라 지역으로의 여행은 그만두는 것이 좋다. 케랄라 주는 '인도 속의 유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두 곳의 장점을 적절히 섞어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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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역사.문화의 융합지 케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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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랄라(Kerala). 이름처럼 밝고 명랑해 보이는 지역이다. 1498년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가 말라바(Malabar) 해안에 도착한 이후, 이 곳은 더 이상 인도스럽지만은 않다. 포르투갈인들은 '먹는 금'인 후추를 노리고 이 지역에 들어와 그들만의 도시를 세웠고, 네덜란드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바로 성당과 교회다. 이곳이 인도스럽지 않다는 첫번째 이유다. 주도이자 여행의 첫 출발점인 트리반드룸(Trivandrum)에서 마지막 행선지인 코치(Kochi)까지 가는 동안 길거리에선 수많은 양식의 교회들을 만나는데, 약 3000만명 케랄라 주민 중 30% 가까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듣고 나면 누구나 깜짝 놀라게 된다.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교회를 가는 인도여성들이라니. 상상 속에선 무척 낯선 풍경이다. 서로 다른 종교끼리 맞싸우지 않고 융화되고 있다는 것은 그릇된 종교관으로 어긋나 전쟁을 벌이는 여타 지역인들에게 소통과 융합의 교훈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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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풍 건물도 잔뜩 있다. 코친 항 인근에는 포르투갈 인들의 옛마을이 고풍스러운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채 남아있고, 유태교 회당 파르데시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유태인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지금은 건물만 남겨둔 채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향신료의 주요 수출항으로 이른바 스파이스 로드(Spice road)의 중심지였던 까닭이다. 바로 웨스턴 가츠 산맥으로 조금만 가면 열대 몬순의 원시림과 향신료 농장, 그리고 호랑이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신기할 따름이다. 이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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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랄라의 산맥, 호수, 바다, 도시
케랄라는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지형인데 여행루트는 남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갔다가 서북쪽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으로 잡았다. 그래야 지형과 문화에 따른 다양한 것을 하나씩 맛볼 수 있다. 산악에 가로막힌 탓인지 각지역 특유의 문화가 잘 보존됐다. 트리반드룸에서 해안가를 따라 가다 만나는 바칼라(Varkala)는 절벽과 아라비아 해안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천년도 넘은 힌두사원이 있고, 해변 옆 절벽 위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것이 우리나라 부산 태종대나 제주 용두암과 닮았다. 아래엔 거친 파도가 날름대고 위에는 멋진 카페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아라비아 해로 태양이 떨어질 무렵 쌉싸름한 인도식 커피나 차이(chai) 한잔을 놓고 노천 카페에 앉아 붉은 태양을 구경하는 재미는 꼭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마냥 기분이 상쾌해질 일이다. 동쪽 고원지대로 오른다. 차가 고불고불한 좁은길을 한참 오른다. 에어콘을 꺼야 그나마 시원스레 오를 수 있는 전형적인 산악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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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야르(Periyar) 호수가 있는 테카디(Thekkady)는 인도 서부를 종(縱)으로 지르는 웨스턴 가츠(Western Ghats) 산맥 중 이두키(Idukki) 지역에 해당하는 고원 지대다. 여기서는 커피와 각종 향신료 농원을 둘러볼 수 있다. 늘 가루 상태로만 봐왔던 후추 나무 덩쿨, 향신료의 여왕이라 불리는 카다멈(Cardamom), 향긋한 레몬그라스, 다섯가지 맛을 내는 올스파이스, 계피 등을 재배하는 농장을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샅샅이 훑어보며 둘러볼 수 있다. 사실 이 향신료는 케랄라의 영화와 고통을 함께 불렀던 마(魔)의 작물이다. 로마시대부터 이미 향신료 교역항을 둘 정도로 이 지역이 번성했지만, 훗날 15세기 말엽부터 단지 '먹는 금'들을 약탈하기 위해 서양 제국주의 세력들은 터 이곳을 찾았으며, 결국 원주민들을 향해 총칼을 겨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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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야르 댐 건설로 만들어진 물라페리야르 호수에 이른 아침 물을 마시러 온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유람선 상품이 있는데 아침 8시부터 운영한다. 2층으로 된 배에 앉아 호수 양옆으로 물을 마시러 나온 맷돼지, 물소, 호랑이 등을 보는 코스인데, 보다 적극적인 유럽계 관광객들은 직접 유람선이 아닌 트레킹으로 즐기기도 한다.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큰 야생동물 공원이며, 호랑이 보호구역이다. 숲에 숨어사는 특성 상 여간 운이 좋지 않으면 호랑이를 보기란 힘들다. 하지만 물총새(kingfisher), 가마우지(snakebird)등 독특한 새 종류는 언제라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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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스 로드의 출발점
이어지는 여정은 '인도의 베니치아'라 불리는 쿠마라콤(Kumarakom)과 최대 향신료 수출항인 코치로 안내한다. 쿠마라콤은 거대한 수로로 곳곳이 이어진 석호(潟湖)를 따라 하우스보트를 타고 유람할 수 있다. 하우스보트는 쌀을 싣던 화물선인 라이스보트가 관광용으로 바뀐 경우인데, 목조선에 야자수잎으로 짠 직물로 싸인 집이 얹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몇시간 빌려 수로를 돌아다니는 투어를 즐길 수 있으며, 숙박을 하는 호텔로도 사용한다. 보통 선장, 요리사, 선원이 탑승하며 서비스와 방은 호텔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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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가 이리저리 연결된 수로는 정말 방대하다. 그 넓은 인도 대륙의 지도에서도 보일 정도다. 과거 이 물길을 따라 향신료와 쌀을 실어 코치까지 날랐으니 케랄라 주민들의 삶이 스며든 터전이었음은 당연한 얘기다. 호수를 떠다니며 경관을 감상하다 물가에 자리잡은 마켓에 내렸다. 음료수와 해산물 따위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는 선착장이다. 얼추 바닷가재만큼 커다란 새우 1마리에 350루피(7000원) 정도. 주방장이 들고 들어가더니 즉석으로 요리를 해온다. 매콤한 향신료를 듬뿍 얹어 볶은 새우 요리가, 커리에 지친 일행들에게 간만의 특식처럼 입맛을 되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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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이라이트'인 코치 항으로 간다. 한때 세계에서 기장 번성했던 국제 무역항이다. 아라비아의 이슬람 문화, 중국 광둥의 어업문화, 유태 상인문화, 포르투갈의 가톨릭 문화 등이 모두 녹아있는 '멜팅팟(문화의 융합로)'이다. 이중 향신료의 흔적은 구도심 마탄체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커다란 향신료 창고며 시장 골목, 포르투갈이 세운 성 프란시스 성당과 네덜란드의 궁전, 유태교회당(파르데쉬 시나고그)등 중세 국제도시로서의 기능과 특성을 완벽히 갖췄다. 바스코 다 가마가 상륙하기 이전 유태인들이 이곳 상권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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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0년 전에 이미 향신료 장사가 큰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이다. 20세기 중엽 이스라엘 건국 이후 모두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고 지금은 딱 9명만 남았다고 한다. 코친 항 인근 해안에는 기중기 형태로 그물을 내리고 끌어올리는 중국식 조업망이 그대로 놓여있으며, 실제 고기를 잡아 팔기도 한다. 이뿐아니라 케랄라에선 가장 인도다운 것을 만날 수 있다. 인도가 아닌 문화를 이미 알고있기 때문이다. 리조트와 호텔도 공연 등, 관광상품까지도 역시 가장 인도적인 것을 보여준다. 깐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 지가 왜 케랄라를 꼭 가봐야 할 50곳의 세계의 여행지 중 하나, 그것도 지상낙원(Paradise Found)분류로 꼽았는지 알만하다.
케랄라 주(인도)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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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랄라 주 가는 길=1주일 정도 일정이라면 주도인 트리반드룸으로 들어가서 코치로 나오는 코스가 유리하다. 뭄바이~트리반드룸 약 2시간(비행기), 트리반드룸 공항~바칼라(Varkala) 약 2시간(차량). 바칼라~테카디 약 5시간(차량), 테카디~쿠마라콤 약 3시간(차량), 쿠마라콤~코치 약 2시간(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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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9월부터 6월까지가 방문 최적기로 꼽힌다. 7~8월는 몬순(열대 우기)기간이라 기상조건이 좋지는 않지만 8월말 열리는 수확 축제 오남(Onam)이 있어 케랄라 주 곳곳이 축제의 흥겨움 속으로 빠져든다. 케랄라 주는 타밀어와 말라얄람어를 주로 사용한다. 영어도 불편없이 통용된다. 인도 사회당이 오랫동안 집권해 공공교육과 복지가 잘되어 있는 편이다. 소득수준과 질서의식도 다른 지역보다 높다. 주요 종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이며 국제 무역항이 있었던 역사성 때문에 기독교의 비율이 타주에 비해 상당히 높다. 전기는 220V 50㎐, 3구형 플러그(∴)를 쓴다. 통화는 루피화를 사용한다. 1루피는 약 20.42원. 입국시 비자가 필요하며 인도대사관에서 발급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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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인도 북부와는 달리 쌀을 많이 먹는다. 기다란 쌀밥이나 숙성시킨 쌀가루를 얇게 부친 아팜(appam)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해물을 많이 먹는 것도 특징. 고급 향신료의 원산지답게 다양한 커리에 무슬림과 포르투갈 음식문화가 녹아들어 생선요리나 해물커리 등 독특한 케랄라 풍 음식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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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챙겨야할 볼거리=인도의 4대 무용 중 하나이자, 중국 경극의 원조로 꼽히는 '카타칼리'가 탄생한 지역이 바로 코친이다. 짙은 화장을 한 남성 연기자가 펼치는 손짓과 표정 연기가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다 쿵푸와 가라테를 연상시키는 인도 전통무술 칼라리파야트, 전통 의술 아유르베다의 발생지로도 유명하니 꼭 체험하는 것이 좋다.